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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Dec 06. 2019

152분이 7000Rpm으로

포드 V 페라리, 2019

재밌다. 훌륭한 이야기에 있을 만한 기술이 적절하게 사용된 작품이다. 갈등과 해결이 반복된다.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가 지속하는 도중에 인물들의 코믹한 장난이 긴장을 풀어준다. 초반에 사용한 대사가 끝부분에 다시 보이는 수미쌍관의 기법은 여전하다. 이러한 요소로 관객을 엔딩 크레딧까지 끌고 간다.


두 시간 삼십 분의 상영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훌쩍 지나간다. 우리는 제목 탓에 자동차 영화라는 편견으로 관람을 시작한다. 물론 자동차 관련한 용어와 장면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나에게는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의 순수한 열정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캐롤 셸비(맷 데이먼)

줄거리는 간단하다. 캐롤과 켄이 힘을 합쳐서 '르망'이라는 경주 대회에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담겼다. 두 남자는 자동차를 사랑하고 레이싱을 좋아한다. 영화라서 둘의 삶이 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과 달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캐롤은 영화 속 연설 중 아버지의 말을 인용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 일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캐롤 자신과 켄을 두고 '항상 집착해야 할 무엇이 있어서 그것에 빠져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일반인의 인생은 어떨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본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답을 찾지 못하고 평생 살아가는 이가 부지기수다. 꿈은 없다. 생존을 위한 목표가 반복되는 지루한 생활이 대부분의 일상이다. 하지만 케롤과 켄은 자신도 모르게 달아오르는 심장으로 오직 한 곳을 위해 달려간다.


열정과 이상은 위험한 단어다. 수많은 사람이 그것에 쓰러졌고 멈춰 섰다. 사회에선 순수한 목적의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때론 타협하고 조롱거리가 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켄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다.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

주인공은 켄이다. 케롤이 아니다. 켄은 외골수에 반골이다. 집안 살림보다 차를 만지고 운전할 때 가슴이 뛰는 남자다. 부인 몰리는 그런 그와 경제적인 팍팍함 사이에서 힘겨워한다. 하지만 버티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고전이 등장한다. 동네 정비소에서 일하는 켄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


케롤은 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물이다. '르망'에서 우승한 유일한 미국인이지만 일반인에게 자동차를 팔면서 무료하게 살아간다. 켄처럼 차와 경주를 사랑하지만 다시 대회에 나갈 수 없기에 일상이 침울하다. 하지만 켄을 볼 때마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흔히 말하는 퓨어 레이서인 켄을 보면서 위로받는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순수한 자에게 더욱 거칠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도전해야 할까. 그 과정이 언제나 우리에게 숙제다. 끊임없는 시기와 방해, 난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맞설 것인가 넘어설 것인가. 우승을 목적하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켄이 우리에게 그 답을 제시한다.

르망 24 레이싱 서킷 '라 샤르트'

그래도 자동차 영화다. 레이싱은 돈이 우선인 세상이다. 이기지 못하더라도 수익을 창출하면 용서된다. 반대로 경주에서 일등인 사람이라도 이익에 방해라면 제거된다. 그 지저분한 세상이 영화에서 꼼꼼히 드러난다. F1도, 르망도, 데이토나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대회 세브링, 데이토나, 르망은 모두 장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는 내구 레이싱이다. 세브링은 미국 플로리다주 세브링에서 열리는 경기다. 현재는 1,000마일(약 1,600km)을 달려야 한다. 데이토나24, 르망24는 각각 미국과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은 내구 레이스다.


한계까지 밀어붙여야 한계가 보인다. 좋은 차와 일반 차를 구분하는 기준은 장시간 고속과 브레이킹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성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느냐다. 엔진이 버텨줘야 하고, 냉각이 정상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브레이크가 과열되지 않고 제대로 감속과 정지가 되느냐도 중요하다.

Ford GT 40

켄은 끊임없는 시승과 착오를 거듭하면서 포드 GT40를 완성한다. 르망24에서 우승한 유일한 미국 차량이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자동차 마니아의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줄 만하다. 풍동 실험, 무게 배분, 엔진, 여러 밸브와 부품들이 고쳐지고 선택되는 과정이 나에게는 어렵지만 전문가에게 재미로 보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하나를 빠트렸다.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이다. 최고의 배우들이 최고의 연기를 내놓는다. 정확한 대사와 동작, 표정으로 맷의 연기는 점철된다. 크리스찬은 주관이 뚜렷한 켄을 맡으면서 엄청나게 감량했다. 볼이 움푹 파였다. 살짝 거북목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진짜 켄과 매우 비슷하다. 사진을 보면 외모도 닮았다.


순수한 열정이 사라질 때 나는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고 싶다. 그만두고 싶을 때 꺼내 보고 싶고, 삶이 지루할 때 꺼내 보고 싶다. 모두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이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쳇바퀴 일상에 지쳐가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들에게 <포드 v 페라리>가 좋은 자극제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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