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지 않아도, 삶은 그 자체로 반짝거린다.
※ 위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입니다. 영화를 추가적으로 즐기기 위한 감상일 뿐 절대적인 견해가 아님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또한 약간의 스포가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나요?’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물음.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기는 힘들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행복을 찾기 힘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행복이라 여기며, 행복하다고 최면을 거는 경우 역시 있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행복’과 ‘삶’을 연결하고자 노력하지만, 정작 행복감을 자주 그리고 많이 느끼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본인이 목표하고, 사회적인 성공이라는 가치에 매몰되어 본인이 원하는 것이 아닌 ‘주변이 볼 스스로’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다보니, 주변과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기도 하고, 단순히 즐거움은 행복이라 여겨서, 엔도르핀이 주는 쾌감만을 찾아서 삶이 피폐해져,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회 속 메커니즘에 의해, 진정한 행복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지는 것 같다. (나역시도 그렇다) 이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달해 줄 영화. ‘소울’이다.
영화는 중학교 음악교사 ‘조 가드너’와 함께 시작한다. 재즈라는 음악에 빠진 그는, 오랜 시간 꿈이었던 유명 재즈 밴드와 함께하는 음악 공연을 앞두고 하수구에 빠져 위대한 사후(Great Beyond)에 가게 된다. 오랜 시간 꿈꿔왔던 공연을 위해 다시 지구로 돌아가길 원하지만, 마음처럼 될 리 없다. 조는 방황을 하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 영혼이 멘토의 도움을 받아 ‘삶의 불꽃’을 찾고, 지구로 가게 하는 위대한 이전(Great Before)에 도달한다. 지구에 돌아갈 티켓인 ‘삶의 불꽃’을 얻기 위해 ‘조’는 멘토로 위장하게 되어 어린 영혼들을 만나는데, 그곳에서 '영혼 22'를 만나게 된다. ‘영혼 22’는수많은 멘토들의 가르침과 대화에도 불구하고, ‘삶의 불꽃’을 찾지 못하고 지구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위대한 이전’의 골칫덩이다.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공연이 하고 싶었던 ‘조’, 지구에는 절대 안 가겠다는 22. 생각 자체가 다른 이 둘은 우연한 사고로 인해 지구로 가게 된다. 하지만, 고양이 몸속에 ‘조’의 영혼이, 조의 육체에는 ‘22’의 영혼이 들어가면서, 난항을 겪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발사로 살아가며 행복을 느끼는 조의 친구를 만나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를 얻기도 하고, 아들의 재즈 음악을 반대하던 조의 어머니가 조의 열정을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조와 22는 본인이 바라본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느낀다. 매일 똑같은 하루에서 재즈밴드 무대에 오르면 문제가 해결되고 새로운 자신이 될 거라는 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사람들을 만나며 기쁨을 느끼는 영혼 22 이 둘은 각자의 방식 대로 삶을 대하게 된다. 22와 함께한 순간들, 그리고 목표로 했던 일의 마무리가 되었을 때 느낀 허무함등을 통해, 조는 매 순간순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영화는 따뜻한 햇살을 즐기는 ‘조 가드너’와 함께 마무리된다.
삶에 대해서 사람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더 멋진 삶을 살기위해, 아니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든, 먹고 살일을 걱정하든 말이다. 글은 적는 나 역시도, 공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지금도, 가장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은, ‘나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 속에 마주하게 되는 모든 일들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속 22 역시 처음에는 다른 영혼들 처럼 지구에 가게 되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지쳐있을지도 모른다.극중 에서 22는 냉소적이고 차갑게 이야기하지만, 정작 본인이 마주하게 될 불안한 미래가 행복하지 않게 느껴지고, 본인의 의미가 사라질까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맞이했던 지구의 햇살의 따뜻함, 피자의 맛, 주변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는 학생과 같은 주어진 일상의 다양함과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소중함이 살아갈 목적이라는 것을 느낀것 처럼,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또는 나에게) 평범함의 소중함을 ㄴ끼도록, 그리고 거창한 목적만이 삶의 이유가 되지 않음을 전달한다. 영화 마지막에 스파크가 튀어버린 ‘삶의 불꽃’은 목적이 아닌 삶을 살 준비가 되었을 때 채워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구로 갈 용기를 얻는 22를 통해서 말이다.
22가 깨달은 것은 위대한 목표가 아니어도 좋다는 것이다. 비전 혹은 재능을 통해 위대한 업적만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 삶 자체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임을 보여준다. 삶의 존재와 목적, 지극히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물음 앞에서 현실과 본인이 꿈꾸는 환상 사이에 허우적대는 우리가 의미 있다고 한 인생은 무엇일까? 아마 각자의 답은 다르겠지만, 영화는 정답에 가까운 한 가지의 답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매일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 하는 사소한 일상들.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보고, 어떤 것을 먹고, 느끼는 수많은 감정 그리고 생각들. 이러한 모든 순간들을 본인의 방식대로 충실하게 느끼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진정으로 즐기는 것. 영화가 제시한 이 답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는 없지만, 하루가 조금의 행복으로 가득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행복한 일상들이 모여 행복한 인생이 된다는 것은 삶을 진정으로 살아간 사람들만이 전달해 줄 수 있는 잠언이 아닐까? 픽사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위로. 내 안에서 반짝이는 나만의 불꽃(삶의 의지)은 나의 지나온 모든 순간임을 할 수 있는 최선의 따뜻함으로 표현한 픽사의 22번째 영화 소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