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커스 소년

by 시니

한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은 서커스 단원입니다

소년은 매일 배가 고픕니다

오늘은 발도 아픕니다

맨발로 아스팔트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오늘이라는 숙명

발바닥이 아파 쩔뚝거립니다

그 발로 상처 투성이 몸을 이끕니다

미처 신지 못한 신발은

서커스 천막 안에 던져져 있습니다


새벽부터 차가운 눈빛과 입술로

채찍질해 대는

단장의 커다랗고 두툼한 손

그 힘 넘치는 손과 때탄 몽둥이가

소년의 몸을 후려치니

소년은 나 동댕이 쳐집니다

뚝뚝 눈물이

훌쩍 콧물이

아악 비명이

천막을 휘청이고 맙니다

냅다 뛰어나왔지만

갈 곳은 없습니다

시장 가는 길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표정을 뒤로 넘기고

자꾸만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닦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부모님은 어디 계시는 걸까


신기한 눈빛으로

조마조마한 입매로

서커스 소년을 쳐다보던

소년만 한 소년들과 소녀들

그들이 고개를 젖혀 보고 있습니다

두 바퀴 공중 회전한 몸뚱이로

단장이 던져준 그네를 잡아야 한다

긴장이었을까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덩그러니 그네는 빈 손입니다

소년은 그네 아래

그물망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책가방을 멘 소년들과 소녀들은

일제히 탄식을 합니다

소년은 고개가 숙여집니다


천막 한 구석에서

잔뜩 화가 난 단장이 내리치는 힘을 맞습니다

그건 매입니다

소년은 매가 아픈 게 아닙니다

소년은 실패가 속상한 게 아닙니다

소년만 한 그들이 자신을 보고 있음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진달래 빛깔 코트를 입은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녀의

뚫어져라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를

더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울퉁불퉁한 아스팔트를

걸을 때마다

찢어진 발바닥이 외칩니다

어디로 갈 건데

갈 곳이 없잖아

오라는 데가 없잖아

그래도 서커스 천막으로 도로 갈 수는 없습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작디작은 소년의 몸 하나 누일 곳이

어딘가는 있으리라

소년은 마지막 남은 눈물을

팔등으로 훔치고

시꺼매진 발로 크게 내디뎌 봅니다

하얀 솜구름 위에 앉은

소녀를

씨익 쳐다보며

힘차게 걷습니다

어쩌면

노주황빛 해바라기밭에서

엄마 아빠가

반갑게 안아주실 거야 라는

생각을 합니다

뒷모습이 하늘을 닮은 소년은

천천히 걸어갑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음엔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