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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 Marine Nov 04. 2020

아픔을 잊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 42번째 이야기

뜻하지 않은 이별이 있은 후 한동안 이 상황을 인정하기까지 참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가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한 척 연기를 했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 억지로 웃으려고도 했고, 나가지 못했던 모임에 더 자주 다니며 일상처럼 지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이 허전함과 슬픔을 달래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휴직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뭐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제 감정을 흔들어 놓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하지 않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했던 건 '정말이지 이 어려움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세상을 등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보란 듯이 이겨내서
다시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습니다. 같은 층에만 수십 명의 동료들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게 말이죠. 이성적으로 감정이 일관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오랜 시간 함께 해온 가까운 몇몇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점점 시간이 지나 일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감정이 복받치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직 저의 아픔이라는 감정은 현재 진행형이었거든요. 그래서 퇴근할 때가 되면 집까지 거리가 약 10킬로 정도 되는데 매일매일 걸어서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2월의 한 겨울 집으로 걸어오는 시간 동안은 내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칼바람 맞으며 눈물을 닦아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원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 순간만큼은 슬픔으로 가득했던 현재 나의 감정에 충실했습니다. 마치 피에로와 같은 시절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도 주저앉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야 집에 가도 정신을 다잡고 다음 날 일할 때 조금이라도 잊고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바쁜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밤 낮 없이 마감에 매달려야 하는 건축가의 업무 특성상 할 일이 너무나 많이 있었거든요. 건축물 계획을 위해 대지 답사도 가야 하고, 건축물 사진도 찍어야 하고, 공모 취지에 맞는 건축법도 숙지해야 하고, 표현을 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잘 다뤄야 하고, 개념 정리를 위해 글도 많이 읽고 써야 하고, 제출물을 위한 기획서도 잘 써야 하고, 협력 업무를 위한 모형제작도 잘 이해해야 하고, 편집실, 출력소, 발주처 보고 기타 등등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마음만 먹으면 잠도 자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제 자리가 어느덧 맨 앞에서 팀원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위치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집중을 해야 했어요. 정말이지 스스로를 봐도 너무 무섭게 작품을 만드는데만 몰두하며 하루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결과물을 제출하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운이 좋게 당선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다시 느껴본 작은 성공은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건축을 할 때 가장 빛이 나는 게 바로 나였는데,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건축물을 디자인한다는 것도
있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20대 나를 빛나게 해 주었던 제 분야에서 제가 사랑하는 작품 활동을 통해서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아마도 인생의 다양한 터닝포인트중에 하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만감이 참 교차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더 좋은 곳에서 공부를 하는 꿈과 제 아이를 더 좋은 환경(경쟁만 요구되지 않는)에서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작은 꿈이 있었거든요. 정말이지 학창 시절 열심히 전공 공부를 했었습니다. 조기졸업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적도 좋았고, 국내에서 석사과정도 잘 끝마쳤습니다. 점점 제가 하는 공부에 정말 많은 흥미를 느꼈고 그래서 내 분야에서 꼭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휴직을 내고 낮에는 육아를 했고, 아이를 재우고 나서는 새벽시간을 활용해 유학을 위해 준비를 하면서 잠자는 시간 줄여가며 도전했던 시기였습니다. 반년을 준비한 끝에 해외의 다수 학교에 입학허가를 받기까지 내 미래와 가족의 미래를 어쩌면 더 멋지게 만들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우연치 않은 사건들로 인해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학교 입학도 연기했고 했지만 끝내 포기하는 메일을 보냈을 때가 아마 그 당선을 하고 난 직후였던 것 같습니다. 노력했고 기회를 받아봤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한발 물러서지만 꼭 더 좋은 환경에서 내 꿈을 위해 공부를 할 것이다'라는 다짐과 함께 출력해놓은 합격증을 제 손으로 찢으면서 속상한 마음에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참 많이도 마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 인생이라는 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구나" 제 의지와는 다른 요인에 의해서 스톱이 되다 보니 어리석지만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만 보면서 수도 없이 달릴 때도 이런 일을 대비해 항상 플랜 B를 세워두길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세워두었던 차선책의 목표를 선택하게 되었답니다.



Note
 어려운 시기에 내가 잘할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 잘할  있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건축을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 했듯이 많은 분들도 분명히 자기만의 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찾아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자신에게 어려운 일이 생겨도 중심을 잡을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있다면 이를 통해서 조금씩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해봐요.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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