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발자국은 금방 사라진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누군가 남긴 희미한 흔적을 따라 걷는 사람이 있다. 어떤 날은 다른 것을 발자국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그 곁을 지키는 눈사람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눈 위에 남아있는 발자국에 제 발을 맞춰보니 발의 크기도, 신발의 모양도, 걸음걸이도 다르다. 꼭 맞지 않더라도, 눈 위에 움푹 파인 자국을 따라, 그는 계속 걷는다.
박시월은 아름다운 순간을 바라보는 사람의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맞춰보곤 한다. 작가는 ‘아름다움이란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타인의 ‘아름다운 순간’을 수집해 왔다. 어느 날 엄마가 기억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를 다시 보게 된다. 엄마는 시월을 임신했을 때 본 태몽을 떠올렸다. 작가는 뜻밖에 자신이 연루된 장면을 마주한다. 작가의 눈앞에, 그녀에 대한 서사와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킨 채 나타난다.
엄마의 발자국에 제 발을 포개어 보지만 ‘엄마와 나’, 두 사람에 대한 수많은 질문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장면과, 그 장면 이후로 맺어온 두 사람의 관계를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 떨어져서도 본다. 바쁘게 뛰어가며 이리 보고 저리 보면 그 많은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월은 함께 보지 못해 그 기억에 다다를 수 없는 자신을, 그 순간이 ‘아름다운 순간’일 수 있었던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마주할 뿐이다.
몰아치는 눈발에 발자국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길 위에 홀로 남겨진 그는 방향을 잃었고, 발자국의 주인도 만나지 못했다. 아쉬움에 사로잡혀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던 찰나, 문득 눈 위에 흐릿하게 남아있던 발자국의 형상과 그 위에 발을 맞추던 자신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한다. 그녀의 발자국과 자신의 발자국 사이에는 틈이 있었다. 그 틈을 보기 위해 움푹한 자국 위에 발을 맞추고 있었나.
그 틈에서 두 사람 사이의 닿을 수 없는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차이를 들여다보는 것, 바로 그것을 위해 그는 다시 발자국을 찾아 걷기로 한다. 모든 것이 눈발에 흩어져 버릴지라도 다시 걷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