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에 코를 박고 잠을 자던 돌덩어리를 뒤집었을 때처럼, 무언가의 '뒷면'에는 낯선 촉감과 습도, 진동하는 생태계가 있다. 비록 그 ‘뒷면’이 좁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가 있다. 하지만 뒤집힌 돌덩어리가 반나절 사이 또다시 흙에 닿아 새로운 뒷면을 만들듯이, 뒷면을 보고자 한 시도는 그 뒷면을 완전하게 포착하지 못한다. 우리는 수분을 흡수해 짙게 물든 돌의 한 측면을, 작은 생물들이 숨 쉬던 습기와 흙냄새를 잠깐 맡을 수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은 어디선가 스치듯이 본 '뒷면'을 기억한다. 이서윤은 마음에 떠오르는 순간의 장면과 긴밀히 호흡하며, 즉흥적인 필체로 표정과 이야기, 사건을 그린다. 여기서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보다 장면을 그리는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 비록 그 장면이 완전한 형태로 기록되지 않더라도 작가는 떠오른 심상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장면을 보다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되고, 이를 통해 그 장면의 의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장면들을 해석하면서 ‘시대의 풍경’이나 ‘삶의 진실’과 같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이면에 다가간다.
이승연은 가까운 이의 죽음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흑연을 문지르고 점토를 뭉개면서 부재자의 형상을 찾아 나간다. 작가는 침실 한구석에서도, 낯선 타지의 풍경에서도 망자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안개 같던 이들은 흑연으로 그려지면서 가시화되고, 점토로 조형되면서 물질적 존재로 거듭난다. 그러나 ‘구름’이나 ‘유령’처럼, 작품에서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형태는 윤곽 정도다. 발견되었으나 그 실체를 알 수는 없는 이들은 윤곽 속 짙고 흐릿한 음영을 통해, 어떤 존재들을 은유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시각적인 형상으로 미처 다 재현할 수 없는 부재중의 존재들을 은유한다.
그 모습과 형태는 들추어낸 돌 뒷면에서 흩어지던 하루살이 벌레들처럼, 속도와 잔상으로 남아있다. 그 형상이 비록 단편일지라도 이서윤은 흐릿했던 초점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이승연은 망자들을 현실로 소환하기 위해 세계의 이면을 주시하고 기록한다.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세계의 절반, 그 반대편에 있는 비물질적인 것들에 관해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두 작가가 여러 각도에서 마주친 삶과 사물과 사건의 뒷면이 놓여있다. 당신이 곳곳에서 경험한 절반의 모양들과도 닮았을지 모른다. 두 작가가 기억하고 당신이 기억하는 절반의 이야기들이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