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노동

by 윤타

해석 노동 interpretive labor


사회생활에서 일상적인 업무의 상당 부분은 타인의 동기와 인식을 해석하려는 ‘노동’으로 소모된다. (쉽게 말해 ‘눈치 보기’. 이 책의 저자가 사용하는 단어)


이 ‘노동(눈치)’은 피고용자가 고용자에게, 노예가 주인에게,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즉, 낮은 계급 사람이 높은 계급 사람에게 한다.


보통(역사적으로) 여자들은, 남자가 여자를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남자들을 잘 이해한다. 여자들의 성향이나 뇌 구조가 특별히 다른 것이 아니라, 여자들은 남자들을 무조건 이해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미국 고등학교의 작문 시간에 하루 동안 성이 바뀌었다고 상상하는 글을 쓰는 숙제가 있었다. 그 결과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획일적’이었다. 여학생들은 ‘모두’ 평소 그 주제에 많은 시간을 생각했을 거라 짐작할 만한 길고 상세한 글을 썼다. 남학생들은 글을 쓰기는커녕 ‘전반적으로’ 아예 그런 글을 쓰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관료제 유토피아> 중 발췌.


_

상대적으로 더 적은 권력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인간의 입장(처지)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인간은 더 낮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해하지 않아도 생존하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능력’이나 ‘실력’이 아닌 ‘권력’은, 인간 사회에서 부당함과 비효율을 만든다.

작가의 이전글아무리 게임이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