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무리가 지나간다. 여자와 남자가 섞여있다. 그중 한 남자가 “오빠가 말이야, 이 형이 말이지~”라며 자신 스스로를 오빠와 형이라고 호칭한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이런 말은, 지배에 순응하고 권력을 숭배하는 ‘문화’에서 나왔다. 나이가 좀 있는 이들은 이런 ‘문화’를 벗어나는 것이 힘들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세대들 역시 여전히 이런 ‘문화’가 남아있다. ‘문화’에 따옴표를 친 이유는 문화가 아니라 악습이기 때문이다.
남을 지배하려면 권력이 필요하다. 권력을 노력이나 실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귀찮아진’ 초기의 지배세력들은 계급(계층)과 나이를 권력으로 만들었다. 계급과 나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계급과 나이는 개인의 노력을 쓸모없게 만든다.
계급을 나누고 연장자를 ‘우대’한다는 ‘풍습’을 널리 퍼트리면서 지배 권력을 쥔 세력들은 ‘노력’ 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했다. 당연히 이런 ‘풍습’은 부당한 불로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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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의 아나키는 지배(권력, 권위)가 없는 것을 뜻한다. 아나키스트는 모든 지배(권력, 권위)를 거부한다. ‘무정부주의자’라는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 아나키스트는 지배하지 않는 행정 조직(정부)은 수용한다. 아나키스트의 적은 ‘정부’가 아니라 ‘지배(권력, 권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아래가 있다는 ‘관념’의 뿌리는 깊다. 언어는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조금이라도 ‘지배(권력)’를 나타내는 용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크로포트킨 <아나키즘>에서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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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해변의 카프카(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서 지적 장애가 있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무척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다. 그는 말할 때 꼭 자신의 이름을 말해야 한다. 자신을 객체화시켜야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장면에서 자신을 ‘ooo 교수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이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내’가 아니라, 교수라는 ‘직업’이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주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객체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