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노동자의 죽음' 감상 후기.

by 윤타

노동자의 죽음 Workingman's Death (2005)


이 다큐멘터리는 인간 역사 최초로 노동자가 ‘국가’라는 권력 집단에 의해 ‘영웅 대접’을 받게 된 소비에트 시절 흑백 필름으로 시작한다. 이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잘 아시다시피 소비에트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감독은 ‘당연히’ 무언가를(정치적 신념 같은 것) 대놓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제3세계 노동자들의 힘든(더 나아가 충격적인) 현실을 한 걸음 떨어져서 있는 그대로 스케치한다.


하지만 어떤 다큐멘터리든지 객관성을 가장한 중립은 거의 구현되기 힘들다. 감독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관객인 ‘나’는 ‘나’의 방식(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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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노동의 종말(죽음)


혐오시설과 힘든 노동집약적 산업이 제3세계에 이전되면서, 독일 철광산업은 하나둘 멈추고 그 공장이 예술적 공간으로 변모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도 당인리 발전소나 석유 비축기지가 문화 예술공간이 되었다. 소위 ‘선진국’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프리카 도축장이다. 샘처럼 솟는 피로 뒤덮인 장면은 자본주의가 ‘피’를 밑거름으로 발전하고 유지되는 현실을 그대로 ‘시각화’ 한 것 같다. 여기서 ‘피’는 노동자의 땀과 생명이며, 이 생명(피)이 ‘순환’하면서 자본주의는 유지된다.


도축장 바닥에 넘쳐나는 ‘피’는 노동자가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실, 도축되는 동물이 바로 노동자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노동자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도축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노동자와 노동의 죽음(종말)을 희망하게 한다. 자본주의이든지 이미 종말을 맞은 소비에트의 국가사회주의이든지 노동자를(사람을) 소외시키는 모든 권력과 집단 체제에 대한 죽음(종말)을 희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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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놀랍게도 이 다큐멘터리의 음악을 존 존 John Zorn이 맡았다. 무척 좋아하는 아방가르드 뮤지션이다. ‘Naked City’는 수백 번 들었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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