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이야기 05.

by 윤타

날이 맑고 화창하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오래 있으면 살짝 더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습도가 적당해서 쾌적하다.


동네에 있는 한 유치원 앞을 지나가는데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유치원 마당이 보이는 담벼락이라, 흙이 있는 작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모두 kf94로 보이는 흰 마스크를 꼈다.


꽤 멋진 밝은 햇빛 속에서 마스크를 낀 채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세기말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화창한 햇볕 아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즐거울수록 더욱 암울하게 보인다.


30여 년 전 학부 과제로 공기오염이 심해진 미래를 그린 적이 있다. 모든 사람이 방독면을 쓰고 다니며 교체용 산소탱크를 자판기에서 구입한다는 좀 뻔한 설정이었다.


인간의 상상은 언제나 현실이 되곤 하는데, 공기는 맑고 날씨는 화창한데도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놀 수 없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때 상상보다도 더 기괴하고 어둡게 느껴진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다. 뭐. 인간의 자업자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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