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 화면

by 윤타

철학자 니체는 눈이 많이 나빠진 이후 타자기를 사용해서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타자기를 사용한 뒤에 니체의 문체가 단순하고 파편적인 글로, 전신 메시지 같은 짧은 경구의 나열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글이 좀 더 함축적으로 바뀌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역시 기술이 (당시로는 첨단 도구인 타자기가) 니체의 글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펜으로 꾹꾹 눌러쓰는 글과, 자판을 두드리는 글의 느낌은 다릅니다. 같은 자판이라도 고치기 불편한 옛날 수동 타자기와 요즘 컴퓨터 키보드도 그 차이가 큽니다. 쉽게 썼다 지울 수 있는 컴퓨터와 휴대폰 자판으로 쓰는 글은 더욱 파편적입니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강박적으로 벌어지는 '재치 경쟁'은 이런 '기술(미디어)’의 영향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기술'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재미있는' 생각을 쉽게 내뱉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기술’이, 즉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가 인간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 '재미있는' 생각이 본인에게만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기술'은 남들에게 상처가 되는 생각들을 즉석에서 손쉽게 모니터 위의 글자 이미지로 변환(번역) 해 줍니다. 최근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런 언어폭력이 소규모 커뮤니티에서만 그치지 않고 공신력 있는 언론이나 방송사에서 ‘방송 사고’로 번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다' 혹은 ‘재치 있다’고 생각한 글과 사진이 남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인간 유형이 이 '기술 사회'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대량 '제조’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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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하루에 한 번, 종이 위에 펜으로 꾹꾹 눌러서 글을 써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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