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버릴 자유

by 윤타

동네 골목길을 지나가다 2~30대 남자 4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잠깐 나온 모양이다. 모두 말쑥하게 정장을 입고 흰 와이셔츠에 어두운 색 넥타이를 맸다. 그들은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며 간간히 욕을 섞은 대화를 나눴다. 순간 그들이 입은 말끔한 정장이 예비군복처럼 보였다. 어떤 남자들에게는 예비군복은 용기를 주는 마법의 망토다.


그 광경을 보고 '더 킹'이라는 한국영화도 생각났다. 영화 속 조폭은 정장을 입었고 판검사도 정장을 입었다. 직업 정치인도, 기자도 정장을 입었다. 다들 비슷한 양복을 입고 무리 지어 있으면 누가 조폭인지, 판검사인지, 직업 정치인인지, 기자인지 구별할 수 없다.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그들이 입고 있는 정장이나 시계, 넥타이가 고급인지 알 수 없다. 겉모습으로는 그들의 직업이나 계층, 품성을 구분할 수 없다. 오히려 양복은 그들을 '평등'하게 만들어 준다.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배우 정우성은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잘 생겨 보인다. 분위기가 깊어졌다. 간혹 이런 영화를 보면서 현실에 분노하고 '교훈'을 얻는 사람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블랙코미디 영화는 재미있을수록 무거운 현실을 재미있는 '볼거리'로 희석시키는 듯하다.


흰 와이셔츠와 넥타이에 어두운 색 정장을 입은 엇비슷한 남자들이 떼 지어 있는 모습을 보면 '인민복’도 생각난다. 뭔가 전체주의적이다. 어쩔 때는 목에 맨 넥타이가 그들의 행동을 (자유를) 제어하는 개목걸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제어’를 ‘보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유롭지만 춥고 배고픈 들개 보다, 자유는 없지만 등 따시고 배부른 집개가 나을 수도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사이퍼'는 자유를 버리고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사이퍼'는 자유보다 돈과 명예를 선택한다. 역설적이지만 그것도 자유라고 불리는 것 같다. 자유를 버릴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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