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들을 읽고 있다. 흡입력이 대단하다. 섬세하고, 어둡고, 아름답다. 그런데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올랐다. 작품 경향이 비슷한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기묘하다. 알고 보니 번역투(적확한 표현은 아니지만)의 문체 때문이었다.
헝가리 사람인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스물한 살에 남편과 갓난아기와 함께 국경을 넘는다. 난민이 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무척 좋아했던 그녀의 짐 가방에는 무거운 사전이 있었다. 이후 스위스에 정착한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이었다.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공장에서 일을 하며 처음부터 다시 말과 글을 배워서 글을 쓴다.
후천적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었던 외국어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헝가리어로 만들어진 자신의 생각을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통해 아고타만의 새로운 문체가 나온 것 같다. 문장은 짧지만 리듬감이 생겼으며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묘사, 넘치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담백한 표현이 무척 매력적이다.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특이한 일본어 문체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그가 처음 소설을 완성하고 다시 읽어봤더니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별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고칠까 고민하다가 내용이 아니라 쓰는 방식을 바꾼다. 먼저 영자 타자기를 이용하여 영어로 타이핑했다. 모국어인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로 글을 쓰게 되면서 문장이 더 간결해졌다. 그리고 펜(손)으로 쓰지 않고 타자기를 이용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니체는 눈이 많이 나빠진 이후 타자기를 사용해서 글을 썼다. 그런데 타자기를 사용한 뒤에 니체의 문체가 단순하고 파편적인 글로, 전신 메시지 같은 짧은 경구의 나열로 바뀌었다. 물론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니체의 글이 좀 더 함축적으로 바뀌었다는 분석도 있고 기술이 (당시로는 첨단 도구인 타자기가) 니체의 글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타이핑한 소설을 다시 만년필을 사용하여 일본어로 ‘번역’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루키만의 간결한 문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이런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 살짝 신비롭기까지 하다. 둘 다 아주 좋아하는 작가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아고타의 소설이 더 감동적이다. 아무래도 아고타가 직접 겪은 무거운 경험 덕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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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아고타 크리스토프에 관한 얘기를 썼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