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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Feb 22. 2023

오늘의 일기.

갑자기, 좀 난데없이, 과자가 먹고 싶어졌다. 아무 과자나 상관없다. 아니, 쿠키 같은 거는 말고 비닐봉지에 담겨있는 스낵류가 좋겠다. 너무 귀찮았지만 억지로 옷을 챙겨 입고 밖에 나갔다. 나간 김에 우유도 하나 사야겠다. 이른 아침이라 대문 앞 골목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에 과자가 먹고 싶어진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나가자마자 바로 10초도 안 되어 옆 골목에서 7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가래가 끓는 헛기침을 크게 한 번 하더니 휴대폰을 꺼내서 트로트를 틀었다. 억지로 목소리를 꺾어대는 날카로운 트로트 보컬이 조용한 골목길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송곳처럼 내 귀를 뚫고 들어와 전두엽을 후벼 팠다. 그 소리를 피해 힘껏 뛰었다. 소리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간신히 그 징그러운 소리를 따돌리고 동네 마트에 도착했다.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먼저 우유 하나를 얼른 집어 들고 과자들이 진열되어 있는 매대로 갔다. 어떤 과자를 먹을까. 신중하게, 천천히, 과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트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노래 하나가 튀어나온다. 알앤비를 흉내 낸 가요다. 남성 보컬이다. " 어흐으어흐어으으어~~~" 사정없이 목소리를 꺾어댄다. 누군가 바로 내 얼굴 앞에 구토를 하는 것 같다. 강한 위산에 반쯤 소화된 걸쭉한 구토물이 바로 내 앞에서 튀어 온몸에 묻는 느낌이다. 그 노래는 쨍한 암모니아 냄새처럼 내 콧 속을 들쑤셨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몸이 무의식적으로 계산대를 향해 움직였다. 황급히 우유를 계산하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과자는 사지 못했다.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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