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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Nov 10. 2023

꽃과 광인

그는 7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다. 자주 지나는 보행로에서 가끔 마주친다. 그가 쓴 모자 앞에 주먹만한 꽃(플라스틱 조화)이 꽂혀 있고 위아래 초록색 옷을 맞춰 입었다. 아무래도 그 특이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얼마 전에 또 마주쳤다. 역시 멀리서도 눈에 띈다. 하지만 그날은 평소 습관대로 앞에 오는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며 걸었다. 


눈앞에 시야를 꽉 채우는 커다란 가상의 직사각형 프레임을 만들고 (모니터 화면처럼) 그 화면 전체를 한꺼번에 보는 버릇이 있는데, 앞에 오는 사람을 보려고 굳이 고개를 돌리거나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아도 앞사람의 얼굴 표정 변화가 얼추 보인다.


그와 점점 가까워지다가 쓱 지나쳐 가는데 그가 뭔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고개와 눈동자를 돌리고 뚫어져라 쳐다본다. 순간 마치 ‘이봐, 왜 이런 나를 쳐다보지 않는 거지?’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속으로 대답했다. ‘이봐요. 할배. 지나가는 사람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지 말라고. 실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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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얼마 전에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홀리 모터스>를 봤는데 옴니버스 영화 <도쿄!>에 나온 광인 캐릭터가 그대로 등장해서 꽤 반가웠다. 


모자에 큰 꽃을 꽂고 위아래 초록색 옷을 입은 그 노인의 모습은 ‘드니 라방’이 너무나 멋지게 연기한 광인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실은 길거리에서 그 노인을 마주치면 즐겁다.


아. 광인(드니 라방)이 꽃을 뜯어먹는 연기가 아주 멋졌다. 꽃과 광인. 역시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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