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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Feb 01. 2024

단편. 비둘기 먹이 1.

도스토옙스키의 한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른 번역은 이렇다.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둘 다 좋다. 하지만 두 번째 번역문의 ‘병적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적’은 왠지 치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슬슬 피해 다니는 아웃복서 같다. 화끈한 인파이터가 낫다. 그냥 ‘병든 인간’이 좋다. 어쨌든 이 소설은 어느 번역이나 아주 좋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은 순간 내 온몸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나는 ‘온몸’이라고 말했다. 나는 일원론자다. 영혼 따위를 믿지 않는다. 나 역시 병든 인간이다. 하지만 ‘병든 인간’이라는 표현은 적확하지 않다. 언어는, 글은, 너무 빈곤하다. 나의 감정과 상상과 생각은 언어나 이미지로 도달되거나 표현될 수 없다. 글을 쓸 때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독방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언어로 표상한다면, 나는 비뚤어진 인간이다. 내가 비뚤어진 인간이라는 걸 나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실은 그렇게 비뚤어진 인간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역시 나는 비뚤어진 인간이다. 


오늘 나는 공원 산책로에서 비둘기에 먹이를 뿌려대는 노인에게 말했다.

“사람 다니는 길에 먹이를 뿌리면 불편하니 바로 옆에 풀밭에다 뿌리면 어떨까요”

나답지 않게 너무 친절하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던 길이나 가쇼”

왜소한 노인은 눈을 부라리고 목도리도마뱀처럼 몸을 한껏 부풀리며 위협적인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노인의 말대로 가던 길을 갔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말했듯이 비뚤어진 인간이다. 나는 그 노인이 매일 같은 시간에 이곳에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원에 붙어 있는 현수막 글>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

비둘기 먹이 주기 행위로 이웃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비둘기가 스스로 목이를 찾아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야생동식물보호법 제2조 5항 및 동법 시행규칙 제4조에 의거 유해야생동물로 지정.


독산구 공원녹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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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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