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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타 May 12. 2024

귀찮음 예찬 16.

오랜만에 멜랑콜리아(2012)를 다시 보았다. 단연 최고의 멸망 영화다. 멸망이 시각적으로 구체화되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끔찍하면서도 아름답다. 멸망을 이렇게나 아름답고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니.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역시, 뭔가 ‘다른’ 인간이 분명하다. 


불안과 우울. 두 감정이 이 영화의 주요 소재이자 주제다. 멸망은 이 두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탁월한 장치다. 


저스틴(커스틴 던스트)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하지만 멸망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안정을 찾는다. 언니(샤를로뜨 갱스부르)는 ‘정상’이다.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동생 저스틴을 돌본다. 하지만 멸망이 다가올수록 불안과 공포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한다. 언니의 이런 반응은 ‘정상’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과연 ‘정상/비정상’으로 나눌 수나 있긴 한 건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우울증이 심한 사람들이 큰일을 겪게 되면 오히려 침착해진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지구의 멸망을 앞두고, 즉 ‘나’ 개인의 죽음을 맞이할 때 나는 어떤 심정이 될까. 마지막으로 어떤 말(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 그동안 참 귀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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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음은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느슨하게 만들어 마지막 순간 평화와 안정을 선사해 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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