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걸어가다가 가끔 눈인사를 했던 길고양이를 만났다.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조그만 액세서리 가게 문 앞에서 배를 하늘에 드러내 놓은 채 편안하게 누워 있다. 일요일이라 가게는 열지 않았다. 아마도 평일이었다면 그 가게 안에 들어가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가게 주인 옆에서 쉬고 있었을 테지. 문 바로 앞에 놓인 그릇에는 아직 사료와 물이 충분하다.
평소에는 살짝 찡긋하는 눈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고양이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고양이 좋아하는 티를 내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길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가 없어졌다. 아직 많이 남아있는 물과 사료를 보니 배는 충분히 부른 것 같고. 배를 내놓고 누워 있는 모습이 조금 심심해 보여서 오늘은 조금 더 다가가도 그렇게 귀찮아할 것 같지는 않다. 가까이 가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고양이는 이거 심심한데 잘 만났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쭉 기지개를 피고 나서 나한테 사뿐사뿐 다가와 내 다리에 비비적거린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동네 길고양이들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 한 오 년 전만 해도 인간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는 고양이들은 만나기 힘들었다. 대부분 화들짝 놀라 피하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만 보이면 해로운 쥐들 대하듯 발을 구르며 위협하는 노인들을 이 동네에서 종종 만났다. 요즘에는 이곳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사 온 모양이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확 젊어졌다. 예쁘고 작은 가게들도 여기저기 생기면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도 늘었다.
일본에서 만난 길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여유로웠고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이 동네는 일본처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 그저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고양이도 변했을 것이다.
이 고양이는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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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개보다 좋아하는 편이다.(물론 둘 다 좋아한다) 그 두 생명체를 보면서 귀엽다거나 이쁘다거나 하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샘솟을 때도 있지만, 요즘에는 거의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특히 '귀엽다'라는 감정은 의식적으로 억누르기도 한다.
그냥 그들을(특히 고양이)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친해지고 싶고, 그 생명체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라는 딱 그 정도다. 그들이 내게 먼저 다가오면 모를까 굳이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특히 길고양이들은 다가오는 인간들의 행위가 위협이 될 수 있다. '귀엽다'는 감정을 굳이 억누르는 이유는 귀엽다는 감정은 상대방을(동물이건 인간이건) 낮춰보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귀엽다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잡는 행동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스스로 아이를 좋아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옆에 있는 여자 친구에게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나를 '사용'했다. 어렸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한 그런 느낌. 무시당하는 느낌. '애완동물' 취급당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애완동물에서 '애완'이라는 단어 대신 ‘반려’가 쓰인다.
개나 고양이를 '귀여워할 줄만' 아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났다. 그들은 개나 고양이가 배설물로 집안을 더럽혔을 때, 그리고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지 않을 때 폭력적으로 돌변했다. 그들은 개나 고양이의 감정 같은 건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만 중요하다. 그들에게 개나 고양이는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완구여야 한다.
개보다 고양이를 조금 더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양이는 서열 개념이 약하고 내게 복종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아서다. 인간도 고양이 같은 사람을 더욱 좋아한다. 위아래가 없는 사람. (흔히 쓰는 관용구와는 다른) 나이나 직급, 권력 같은 것에 상관하지 않고 서로 가볍게 존중하며 편안하게 대할 줄 아는 '고양이적'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