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음악, 직관음악, 우연적 음악, 그리고 수학적 음악
"모든 음악이 만인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발상이다. 음악이 인간에게 신비스러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극소수만이 일반 대중보다도 훨씬 더 재능 있는 음향적 반응을 나타낸다." -슈톡하우젠
안타깝게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음악이란 그저 OST이고 '패스트패션'이다. 삶의 배경에 작게 깔려서 입맛을 돋우는데 약간의 도움을 주는 소소한 유희일뿐이다. 그 소소한 유희가 누구나(아무나) 할 수 있는 힙한 유행이 되어 홍대 앞의 길거리 버스킹 문화가 되기도 하고, 록음악을 좋아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록 페스티벌 문화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깊은 한탄마저 나오는 것이, 홍대 앞의 버스킹 문화는 정말 끔찍하다. 구경하는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공연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그저 겉에 두르는 유행 타는 목도리 같다. 음악에 대한 사랑, 열정, 존중 같은 다소 감성적인 단어는 감히 낄 자리도 없다. 지나가다 들으면 그저 못한다. 연습은 연습실에서 해야 한다. 적어도 튜닝은 맞춰야 한다. 소음공해니 배려니 이런 건 나중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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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톡하우젠은 소위 더 깊이 있는 음악이라고 '취급'되는 즉흥음악에 대해서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자유즉흥(free improvisation) 음악, 일반인들은 주로 프리 재즈에서 접했을 이 음악형식도 슈톡하우젠이 보기엔 '즉흥'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합당하지 않은 음악이다.
양식, 리듬, 선율 등의 순서에서 나오는 분명한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꽤 즉흥적으로 보이는 인도의 민속음악 '라가'나 '탈라' 역시 스승에게 전수받은 연주의 변주 법칙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창의력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많은 재즈 음악팬들이야 그 법칙 안에서의 즉흥연주로도 연주자의 창의력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슈톡하우젠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슈톡하우젠의 음악 작업 중에 확률적 방법으로 작곡한 것이 있다. 이 작업은 숫자의 법칙을 설정하여(마치 행렬처럼) 전기 주파수를 변형해서 만들었다. 의미 있는 숫자와 연결되는 여러 주파수를 겹치는 방법으로 작곡했다. 겹쳐진 주파수는 특유의 집단이 되고 다른 집단과 비교하면 뚜렷이 다른 모양과 성향을 나타낸다. 이건 마치 수학의 행렬이나 집합을 보는 것 같다.
그는 우연적인 기법이(작곡이건 연주건) 음악에 다양하게 적용되는 것은 확률적 방법의 변형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수학이다!) 슈톡하우젠은 '진정한' 즉흥음악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나의 악보를 주고 뮤지션들이 그 악보에 '근거'하여 연주를 하게 했다. 텍스트로 되어 있는 악보다.
'어떤 음을 연주하시오.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소유한
확신을 갖고.'
이 텍스트를 보고 연주자는 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 이 악보를 보고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당시는 아직 1960년대 말이었다. 실제로는 2시간 30분 정도 연주했다고 한다.(무한한 시간은 아니었다) 슈톡하우젠은 뮤지션의 깊은 직관과 무의식까지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직관음악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바흐 시대에도 즉흥음악이 있었다. 현대의 프리재즈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과격한 법칙을 지닌 즉흥음악이.
프로이센의 군주 프리드리히는 음악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뛰어난 플루트 연주자이자 작곡자이기도 했다. 그의 궁정에서는 간혹 즉흥연주를 통한 지적 유희가 펼쳐졌다고 한다. 즉흥연주는 당대 음악가의 사교 수단이자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끼리 벌이는 지적 유희였다. 상대방이 연주한 멜로디를 소재로, 이를 기반으로 해서 끝없이 변주해야 한다. 일종의 끝말잇기 게임이다.
어느 날, 프리드리히가 준 주제로 3성 카논을 멋지게 만든 바흐가 주위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3성 카논을 즉흥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오늘날로 치면 뭐랄까, 즉석에서 자바스크립트, C++, 파이썬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만드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카논은 하나의 주제를 다시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만든 성부가 몇 겹으로 겹치면서 변주된다. 즉흥이지만 화성도 맞춘다. 시간차(두 박씩 밀리며 겹치기 등)를 두면서도 음악 형식이 유지되어야 한다. 뒤로부터 역행하는 연주가 겹쳐도 음악이 이루어진다. 이와 비슷한 푸가는 카논보다는 덜 엄격하다. 감정이나 예술성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아무튼 음악인지, 집합 행렬 같은 수학인지 모르는 이 유희를 '그들은' 즐겼다고 한다.
슈톡하우젠도 '그들' 같은 부류였을 것이다. 하지만 슈톡하우젠이 그 궁정에서 이 유희를 지켜봤다면(아마 팔짱을 낀 채로) 시니컬하게 비판했을지도 모르겠다. 즉흥 3성 카논 같은 것은 복잡한 낱말퍼즐게임에 불과하다며. 음악엔 깊이 있는 직관이 담겨야 한다며. 뭐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