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하철에서
지하철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적다. 곳곳에 듬성듬성 자리가 비었다. 어디에 앉아서 가야 가장 쾌적할 것인가. 빠르게 관찰하고 분석한 다음 결론을 내렸다. 젊은 여성과 깔끔하고 조용할 것 같은 아줌마 사이에 자리가 비어있다. 저 자리다.
그 자리에 앉아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읽고 있는 책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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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여성 사이에 앉아서 읽었던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르베르트 볼츠, <미디어란 무엇인가>
미디어가 상호작용적일수록(예컨대 소셜미디어 같은) 정보는 더욱 주변적이 된다. '주변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할 때 그 정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보 자체보다 단지 소통한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 소통(커뮤니케이션)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말한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미 새롭고 우아한 링크 가치 linking value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이미 '커뮤니케이션 게임'이 항상 완벽하게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게임'이란 별다른 목적 없이 전화를 붙잡고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행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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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고 있었다.
옆에 앉은 여성이 빠르게 문자를 주고받다가 전화로 미디어를 바꿨다. 직접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친구인 것 같다. '짜증 나~~'라는 단어가 말이 끝날 때마다 어미처럼 반복된다. 친구와 서로 하소연을 주고받는다. 말 끝이 계속 올라가며 늘어지는 특유의 어투와 함께 말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여성이 주고받는 정보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지하철에서 자신의 친구와 소통하고 있다는(연결되어 있다는) '링크 가치 linking value'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여성은 바로 옆의 나와도 '링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다. 나는 그 여성과 그 여성의 친구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대화의 내용(정보)뿐만 아니라 그 친구의 말투까지 들린다. 원하지 않는 소통(커뮤니케이션)이었다. 폭력적 소통이었다.
이 폭력적 소통을 끊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목소리가 도달하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귀에는 인 이어 이어폰을 꽂았다. 주변과의 연결을 끊고, 들고 있던 책과 둘 만의 소통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