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답다'는 말을 자랑스러워하는 남자들이 있다. 남자답다는 말은 여자답지 않다는 말과 같다. 여자답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는 말이 된다. 어떤 집단(여성)을 낮춰야(부정해야) 비로소 자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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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 셋이 브레이크 없는 픽시 자전거를 타고 괴성을 지르면서 인도와 도로를 질주한다. 거리를 걷던 행인들은 위협을 느끼고 그들을 쳐다본다. 소년들은 자전거를 탄 채로 마트 1층에 들어간다.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실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또 한 차례 괴성을 서로 주고받으며 사람들이 손으로 잡는 에스컬레이터의 난간을 날렵한 원숭이 무리처럼 발로 밟으며 뛰어 올라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오픈된 단체 식당가가 있다. 그 소년들은 목이 말랐는지 연신 왁자지껄 소리를 질러대며 한쪽에 설치된 정수기의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나이 지긋한 어떤 남자들은 아마 그 모습을 보면서 ‘사내 녀석들이라면 저렇게 거칠게 놀 줄도 알아야지.’하며 껄껄댈지도 모른다. 자신도 예전에 저렇게 ‘활기’ 차게 놀았던 추억을 생각하면서.
소년들은 힘으로 서열을 정한다. 강한 소년을 중심으로 무리가 형성된다. 소년들은 강해지고 싶어서 강한 소년 옆에 붙는다.
소년 무리는 ‘사내 녀석들이라면 거칠게 놀 줄 알아야지.’하는 나이 많은 남자들의 묵인과 방조, 그리고 북돋움에 힘입어, 소녀 무리하고는 다르게 마음껏 ‘거칠게’ 놀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 하지만 그 허락은 실은 나이 먹은 남자들의 자기 합리화이다. 그들은 소년들에게 넓은 아량을 과시한다고 착각하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영화 속에서는 얌전한 주인공을 괴롭히는 소년 무리들이 흔하게 등장한다. 그 악동 무리들과 싸우며 성장한다는 스토리들은 재미있다. 소년을 벗어난 남자들은 이런 영화를 보며 아련한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어떤 남자들은 남들을 괴롭혔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고 어떤 남자들은 그들에게 괴롭힘 당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소녀들의 치마를 들추며 ‘아이스케키’라고 외치고 길거리를 점령한 듯 거칠게 노는 소년들을 보며 ‘사내 녀석답다.’며 이를 묵인하고 방관한다. ‘사내답다.’는 말에는 자신의 비틀어진 폭력성을 정당화하려는 자기 합리화가 담겨 있다.
‘사내(남자)답다.’는 말은 측은하다. 여자를 객체로 만들고 남자를 주체로 만들어서 자신을 높이려 한다. 남자답다는 말은 여자답지 않다는 말과 동의어다. 남자답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여자답지 않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다. 여자를 2등 시민인 낮은 객체로 만들어야 비로소 자신이 높아진다.
다른 사람을 낮춰야 자신이 높아진다는 것은 측은한 일이다. ‘나’라는 개인이, ‘나 자신’이라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주체가 없기 때문에 억지로 객체를 만들어서 주체가 되려고 한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고 강해지고 싶지만, 자신 ‘개인’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사내’라는 무리 속으로 들어가 숨는 여린 소년이 된다.
무리를 지으며 거친 장난을 치던 소년들, 힘으로 위계를 정한 소년들은 그 모습 그대로 자라서 자신의 즐거움(이득)을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권위와 권력에 굴복하고 빌붙는, '주체'가 없는 어른이 되어 서로의 잘못을 묵인하고 방조하며 합리화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