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1편에서 주인공 '토마스 앤더슨'은 낮에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프로그래머로, 밤에는 해커 '네오'로 활동한다. 각본 감독을 맡은 워쇼스키 자매(당시엔 형제였다)는 영화 '매트릭스' 안에 여러 의미를 담은 장치들을 섬세하게 심어두었다.
'네오 Neo'의 철자는 '그 One'의 철자를 변형한 것이다. '토마스 앤더슨'의 '토마스'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던 제자 '도마'에서 따왔다. '앤더슨 anderson'은 앤드루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스웨덴 어이며, 사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어근 'ander-'에서 나왔다. 앤더슨은 '사람의 아들'을 뜻한다. 따라서 '토마스 앤더슨'은 네오가 '그(the one)'로서 자각하기 전의, 깨어나기 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네오가 초이에게 불법 소프트웨어를 건네줄 때, 두꺼운 표지의 양장본 책을 꺼내 펼친다. 책 내부를 칼로 파내어 그 안에 저장장치를 감추어 두었다. 그 책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었다. 불법 소프트웨어를 받은 초이는 네오에게 "할렐루야, 너는 내 구세주야. 나의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매트릭스가 가상현실(시뮬라시옹)이라는 것을 영화 초반부에 노골적으로(잘 보이진 않지만)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 외에도 플라톤의 동굴, 소크라테스의 신탁 이야기, 불교의 공, 니체의 영원회귀, 데카르트의 회의론, 사르트르의 '구토' 등에 나오는 여러 철학들이 영화 곳곳에 담겨 있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말한다. "자네는 평생 동안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껴왔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자네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 자네를 미치게 만들지..." 영화 속에서 '그 뭔가 잘못된 것'은 인류를 통제하는 가상현실 시스템인 매트릭스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이 현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며 살아오고 있다.
다니엘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에서는 '무언가 잘못된' 이 사회의 환상(허상)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쉽게 묘사되어 있다.
직장에서 힘들게 일한 사람들이 서울을 벗어나 휴가를 떠난다. 알프스의 산장처럼 통나무로 '장식'된 숙박시설은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통나무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는 가짜다. 또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지불하는 돈은 실은 그 사람들의 직장으로 고스란히 되돌아간다. 숙박시설은 그 직장의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해외여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쳇바퀴 안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
간혹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사건이 터지기도 한다. 최순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우리 삶 주변을 둘러싼 그 이상했던 일들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다.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뭔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우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통제하는 세력(시스템)이 곳곳에 있다는 느낌은 SF영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닌 현실임을 알게 된다.
어떤 초인이(구세주가) 나타나 이 잘못된 세상을 구원해주기를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칸트에 따르면 예수는 무기력한 인류를 구원하는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우리 내부의 신인神人적 잠재력의 모범이다. 영화 '매트릭스' 1편의 결말은 네오가 초인으로서(구세주로서) 인류를 구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매트릭스의 실재를 보여주겠다는, 단지 교사敎師로서의 선언을 하며 끝이 난다.
네오는 혼자만의 능력으로 스스로 구세주가 된 것이 아니었다. 모피어스를 비롯한 '일반'사람들이 그를 발견하고 이끌어내었다. 결국 '매트릭스'는 구원은 외부에 있지 않고,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메시지는 매우 현실적이다. 사람들 스스로가 광장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는(탄핵은) 없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