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려는 것과 알려주는 것

by 윤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유리알 유희>에서 주인공인 소년 크네히프가 음악 명인을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음악 명인은 소년 크네히프와 함께 연주를 한다. 음악 명인은 크네히프에게 음악을 가르치지 않는다. 음악이 즐겁다는 것을, 연주할 때의 행복과 충만감을 '알려'주었다. 크네히프는 이 날 이후부터 음악 명인을 자신의 가장 깊은 친구이자 스승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조금 더 아는 것을 알려준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하게 되면 학생들을 무시하거나 압박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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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려 하지 말아 주세요'

어느 기관에 심사를 갔다가 본, 심사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안내글이다. 심사위원들이 '심사'하지 않고 '강의'를 해서 심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문제가 많았던 것 같다.

상대방의 말이나 글을 잠시 본 것만으로(혹은 많이 봤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생각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힘들다. 때로는 말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주변 상황에 맞춰 너무 완곡하게 표현하느라 참뜻이 왜곡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만큼 상대방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은 잘 모를 거라고 무시하면, 상대의 생각을 오해하게 된다. 상대방의 말과 글에 내가 모르는 어떤 사정이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게 된다. 마음껏 '가르쳐도' 괜찮을 정도로 지성과 지식의 차이가 매우 큰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을 가르치려는 사람이 그 상대보다 지성적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상대방이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것 같다면,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것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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