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의 조급증을 관리해야 진정한 CMO가 된다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내 업무의 커다란 한쪽 부분은 회사의 내부고객을 관리하는 일이라는 점이 너무나도 분명해진다.
내부고객을 관리한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내부 고객들의 기대와 조급함을 관리한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기대 불일치 이론과 그 궤를 맞추고 있다. (기대 불일치 이론은.. 다음에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신제품을 기획하고 나서 시장에 출시하고 성공시키는 데 있어서 소비자를 이해하고 소비자를 설득하고 구매로 유인하는 일만큼이나 내부고객을 관리 아니 내부고객의 기대와 조급함을 통제하는 부분이 전체 브랜드의 출시 성과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소비자보다, 회사의 내부 통제가 더 어렵다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가 내 브랜드를 론칭하는데 돈을 쓰라고 허락해 주고 있나? 누가 이 광고의 성과를 단기간에 잘 된 것인지 못된 것인지 평가해 주고 있나? 누가 론칭 후 추가로 2차 광고를 진행하는데 할지 말지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나? 누가 내가 하는 마케팅 활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주변에 있는 많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 혹은 나를 깍아내려야 자기가 이 회사에서 포지션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위 속물 같은 정치적인 사람들로부터 나를 다르게 생각해 주고 있나?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소비자나 고객이 아닌, 회사 내부 고객 중에 가장 높으신 분, 혹은 분들이다(부문장님, 사장님, 회장님 급?).
이 내부고객의 최고 책임자를 브랜드를 출시하기 위해서 먼저 설득하고 출시를 하게 되었다면 그 기대감과 조급함을 관리하는 것이 출시 초기에는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내부고객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30년 정도 마케팅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하는 철칙이며 지금까지 마케팅 업무를 해오면서 느껴왔고 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다.
그런데 내부고객관리에서 어려운 일, 그 민감하신 내부고객 분들의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분들이 마케팅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고(하지만 본인들은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전문가라고 하시기도 한다) 관심과 열정이 넘치시며 본인이 우리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고, 심지어는 본인이 우리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이분들은 그들에게 영향을 주변에 계시는 분들, 친구들, 그분들께 한마디 툭 던지실 수 있는 분들 마저도 우리의 소비자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어쩌면 생각하시는 수준을 넘어 맹신하실 때도 있어서 미치는 경우도 많다).
방금 론칭한 신제품 광고를 일주일 틀고 나서, 매출 반응이 좀 느린 것 같아 걱정하며 보고를 들어갔는데.. "이제 일주일이나 광고를 해서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는데 왜 제품 판매가 안되는 거냐? 왜 우리 제품의 좋은 점 이해를 못 하는 거냐? 왜 사이트에 들어오는데 구매를 안 하는 거냐?"라고 물어보신다 하지만 놀라면 안 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분들은, 실제로 본인이 하루에 수십 번씩 우리 브랜드, 우리 제품의 광고를 찾아보시기 때문에 실제로 지겹다는 생각이 드실 수 도 있다. 본인은 지겨우니 다른 광고로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말을 하시는 것이 당연할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는 한 번도 이런 제품을 구매해 보신 적도, 직접 매장에 가신적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해 보신 적도 없으신 본인과 주변 지인분들(이런 분들은 대부분 직접 물건을 구매해 보시는 경우가 없다)이 하는 이야기를 진정한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하는 이야기라고 착각하신다.
가성비 가심비를 아무리 말씀드려도, 아무리 비싸도 일단 제품이 좋으면, 그냥 사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시고 이해가 안 되는 믿음, 어쩌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확실한 신념이 있으시다. 이렇게 성공을 해온 분들은 좋은 제품만 내면 미친 듯이 소비자들이 구매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맹신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대놓고 싸우면 그냥 아웃이다. 회사에서 나가야 한다. 우리 같은 직원은 그분들을 어떻게든 설득하고 그분들이 기다릴 수 있게 대안을 드려야 한다. 그게 어쩌면 나의 정말 진정한 업무고 마케팅 담당자가 노력해야 하는 업무의 방향이다.
성공하면 , 발 담그는 놈이 수십이고 실패하면 모두가 내가 혼자서 독박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그게 마케터의 일, 마케팅 책임자의 일이라는 게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보통사람은 쉽게 느낄 수 없는 즐겁고 짜릿하고 도박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박도 술도 담배도 안 하는 내가 남들과 다른 즐거움과 짜릿함 모험 그리고 일탈 대신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토요일에 사무실에 앉아서 어떻게 이 어려운 상황을 넘겨야 하는지를 고민하다 집에 와서 이 글을 끄적이고 있다.
하지만, 싫지 않다. 내일은 또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우리 높으신 분들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스토리를 짜 왔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