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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Jun 28. 2022

작문 연습: 후회

후회'에게' 쓰는 연애편지

  후회야.

  왜?

  우리 이제 헤어지자.


  종종 그렇게 너를 놀린다. 이제 남은 삶 너 없이 살아가겠다고. 잘 살 수 있다고. 진심인 척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게 된 대여섯 살 코흘리개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면서 실천하지도 실현되지도 않은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말을 계속 중얼거린다. 왜일까. 힌트가 있긴 하다. 내가 지인에게 너와 같이 놀았다고 하면 가끔은, 야, 걔 만나지 마. 걔가 없어야 네 삶이 행복해. 하고 수군댄다. 인터넷을 보면 너 같은 사람과 어떻게 헤어지면 되는지 친절히 안내하는 글이 무수하다. 거기선 늘 자신감 있게 살라던데. 그래서 그런 걸까.


  농담을 들으면 너는 보통 피식, 가끔은 까르르 웃고 내게 똑같이 농담조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라고 되묻곤 한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그냥 말을 흘려보낸다. 글쎄, 모르겠다. 아니, 너를 좋아할 순 없다. 만일 너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면, 나는 내가 죽을 만큼 미워서 용서하지 못하겠지. 돌아갈 수 없는 길로 되돌아가려다가 나를 망치고 말 거야. 또 주변에서 하는 말처럼, 사실 너와 함께 한 날은 좌충우돌과 좌절로 점철됐다. 나는 대개 네게 악다구니를 치거나 흐느껴 울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진이 빠지는 면접을 마치고 너는 우당탕 전화를 걸어 내게 물었다. 이렇게 하면 면접관이 마음에 들어 했을까? 에이, 저렇게 말했어야 했어. 나는 네 말이 싫으면서도 열심히 움직이는 네 목소리를 듣고 탄식, 아니 탄복했고 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했다.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또 눈물을 흘리며 전화했다. 어떻게 네가 말하는 건 틀리는 게 없냐. 다음엔 반드시 붙어서 너를 내 곁에서 떨어뜨릴 거야. 너는 대꾸했다. 자빠졌네. 또 나를 찾게 될 거야. 너는 가지 않은 길을 곱씹게 될 거야. 믿거나 말거나! 그 말대로, 나는 사흘을 못 기다리고 인간관계로 홀로 꽁해져 너를 또 찾았다.


  신기한 점은, 그런 일이 지나고 나면 나는 네가 한 말에서 교훈을 얻고,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터득한다는 거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흔해 빠진 영화 대사로 말하자면, 너는 나를 완성한다. 그런 생각도 한다. 너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억세게 운이 좋아 인생이 잘 풀리는 사람이거나, 자기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멍청한 사람 둘 중 하나일 거야. 한 번 한 잘못을 반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더라. 그런 사람을 종종 봤어. 왜, 있잖아, 직장에서 남의 몸을 허락 없이 만지고도 잘못인지 모르는 늙은 상사 같은.

   

  …좋은 접근이야. 그런데, 그것도 자기 하기 나름이야. 나하고 볼 것 못 볼 것 다 봤는데도 바뀌지 않는 사람도 있어. 짜증 나. 아마 너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너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준다. 성찰. 그렇게 생각하니 네가 좋아질 것도 같다.


  지금도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건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일이다. 에디트 피아프가 부르는, 너와 헤어지고 다시 시작한다는, 이별 통보인지 연애편지인지 모를 노래가 스피커 사이로 흘러나온다. 내가 너하고 헤어질 일은 없겠다, 그런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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