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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Jul 14. 2022

작문 연습: 유토피아

노동지옥에서 살아...남기?

  태오 씨는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어릴 적 작은 모니터가 보여준 세계는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한 게임 회사에 개발자로 입사했습니다. 행복한 회사에 오신 걸 환영해요. 게임을 좋아하신다고요? 이 회사에 있는 우리 모두 게임을 좋아한답니다. 원 없이 하게 해 드릴게요. 우리 같이 게임을 만들어 봅시다. 태오 씨는 기뻤습니다. 열심히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회사는 일주일에 80시간씩, 중요한 일을 앞둘 때 일주일에 120시간씩 바짝 일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태오 씨는 참 행복했습니다. 삶이 그렇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태오 씨는 자신이 죽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천사가 어깨를 두드리더니 다짜고짜 서류뭉치를 들이밀었거든요. 태오 씨의 사망신고서였습니다. 바로 옆에는 태오 씨의 육신이 쓰러져 쥐 죽은 듯 있었습니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 태오 씨는 말없이 신고서에 서명했습니다. 어렴풋이 결말을 알고 있었거든요. 천사는 감정의 5단계를 건너뛰고 처음부터 말을 잘 듣는 사람은 드물다며 놀라워했습니다. 게임만 보고 살았던 태오 씨는 최후의 심판도 건너뛰고 바로 천국으로 보내졌습니다. 태오 씨를 태운 비행기는 삼도천을 건너 하데스 국제공항에 착륙했고, 간단한 입국심사를 거쳐 천사는 태오 씨를 천국에 풀어 주었습니다.


  천사는 비행기에서 태오 씨에게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천국은 생각만 하면 어떤 물질이든 나타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일하지 않아도 돼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곧바로 잊어버리는 말이 ‘돈’이에요. 게임? 하고 싶으면 해요. 태오 씨는 알쏭달쏭한 기분 속에 자신에게 배당된 도시 한 귀퉁이 작은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태오 씨가 문을 열자 잠들기 전 살았던, 빛이 들지 않는 퀴퀴한 방이 나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먹었던 라면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으악. 눈을 잠시 감고 뜨자 습기가 사라지고, 방이 두 개 딸린 펜트하우스가 되었습니다. 손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더락 위스키 한 잔이 들려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보던 대로네.


  유토피아였습니다. 시계가 부르르 몸을 떨며 오전 여덟 시가 되었음을 말해주면, 태오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햇살이 비쳤습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은 행복했습니다. 이곳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도 이제 모르겠습니다. 태오 씨에게는 이웃도 많았습니다. 입주하던 날 눈을 감을 틈도 없이 수십 명이 펜트하우스 옆에 따라 입주했고, 도착했을 때 막다른 길이었던 집 앞 도로는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졌습니다. 이웃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다들 자신만의 매력으로 무장하고 거리를 산책했습니다. 태오 씨는 이웃을 보면 상냥하게 인사했습니다. 때로는 게임을 권했습니다. 회사에 다닐 적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웃끼리 정원에 모여 파티를 열었습니다. 어쩌다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 서로 물었습니다. 그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코로나19에 걸렸는데 치료받지 못해서. 임신을 그만두고 싶은데 수술해 주는 곳이 없어 음습한 곳에서 수술을 받았다가. 술 마신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치여서. 부모가 죽으면 장애인이라고 제대로 돌봄을 못 받을까 봐. 영하 이십 도 한겨울에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새로 사귈 남자가 없나 찾으러 클럽에 갔다가 난데없이 날아온 총알에 맞아서. 그리고 태오 씨와 비슷하게, 과로해서. 이야기하며 모두 웃었습니다. 그러다 울었습니다. 태오 씨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나와 비슷하게 억울한 사람이 많구나.


  모든 것이 꿈이었습니다. 태오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익숙한 방이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빛이 들지 않고 퀴퀴했습니다. 라면 냄새가 났습니다. 천사는 없었습니다. 육신은 빌어먹게도 멀쩡했습니다. 태오 씨는 행복한 회사로 출근했습니다. 그날은 이튿날 오전까지 일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이런 말이 오갔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씩이나 일한다고요? 저기서는 열여섯 시간씩 일해요~ 행복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 평등해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선진국에선 다 그렇게 일해요~ 노동조합이요? 그런 거 없이도 우리 다 즐겁게 일하잖아요~ 그만두고 싶다고요? 그래 그만둬요~ 할 사람 많아요~ 태오 씨는 웃었습니다. 그러다 울었습니다.


  태오 씨는 행복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처음으로 게임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유토피아에서 본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분명 억울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면서, 이야기를 캐서 알리고 싶다는데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한번 두고 볼까요? 태오 씨의 당당한 모습을 응원합니다!


 …


  태오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익숙한 방이 나타났습니다. 햇살이 비쳤습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육신은 멀쩡했습니다. 천사가 다시 서류뭉치를 내밀었습니다. 유토피아에 온 것을 환영해요. 진짜죠? 그럼요. 태오 씨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태오 씨는 참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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