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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Apr 16. 2021

벽을 무너뜨린 저 작은 균열을 보라

데이비드 보위, "Heroes"

공식 뮤직비디오. 스튜디오 버전보다는 짧다.


"Heroes", 1977

HE“Heroes” (1977)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1947~2016). 지기 스타더스트란 페르소나를 창조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평생,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음악에 오롯이 바쳤던 위대한 아티스트.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과 콘셉트에 호기심을 가진 카멜레온. 연기자로 일했을 정도로 재능이 많았고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 그가 남긴 수많은 곡에서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Heroes”다. 


70년대 중반 보위는 음악은 정상에 올라 있었지만 개인은 시궁창에 떨어져 있었다. 소울 음악에 천착한 <Young Americans>, <Station To Station>이 성공을 거두었고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란 새 페르소나도 창조해 냈지만 말썽도 잦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면서 코카인 중독에 시달렸고 파시즘 옹호 발언에 공공장소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등 구설수에 휘말렸다.


그런 생활에 지친 보위는 1976년 도망치듯 로스앤젤레스를 빠져나와 서베를린으로 향한다. 서베를린에서는 친구이자 펑크 록의 전설, 이기 팝(Iggy Pop, 1947~)과 같이 살게 되었는데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1948~)와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 1944~)가 합류한다. 보위는 베를린에서 요양과 약물 중독 치료에 전념하고 이기의 작업을 도와주는 한편 두 프로듀서와 함께 새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 보위는 연달아 앨범 3장을 발표했는데 이걸 ‘베를린 3부작’이라 부른다. <Low>, <“Heroes”>, <Lodger>.


왼쪽: 토니 비스콘티와 데이비드 보위. 둘은 앨범 14장을 같이 작업했다. ⓒ Brandon Mason 오른쪽: <"Heroes"> 앨범 커버.


<Low>에서 보위는 전자음악, 특히 독일에서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등이 발전시킨 크라우트 록(Krautrock)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프로듀서 이노의 앰비언트 음악을 접목해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 <“Heroes”>도 <Low>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서베를린의 한자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악명 높은 베를린 장벽에서 고작 500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근처에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보위와 이노, 비스콘티는 축축하고 무거운 냉전 시대 베를린의 분위기를 앨범에 녹여냈다. 


어느 날 보위는 우연히 비스콘티가 백업 보컬 안토니아 마스(Antonia Maaß)와 스튜디오 바깥 장벽 근처에서 껴안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보위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Heroes”를 작사한다. 다만 당시 보위는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비스콘티는 그때 결혼한 상태였다). 대외에는 'The Wall', 베를린 장벽 앞에서 열렬히 키스하는 두 사람을 보고 곡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 명은 서베를린에서, 한 명은 동베를린에서 온 커플.


가사는 깊은 사랑에 빠진 커플 이야기다. 둘을 가로막는 것이 너무 많고 영원히 함께할 수 없더라도 지금 같이 있는 이 순간, 오늘 하루만은 우린 자유롭다는 내용이다. 오늘 하루만은 우릴 가로막는 게 없어. 우리는 영웅이야(“We can be heroes, just for one day”). 곡도 그런 내용에 맞춰 굉장히 웅장하고 진취적이다. 처음에 흐르는 기타는 또 다른 거인, 킹 크림슨의 기타리스트 로버트 프립이 연주했다.


I, I can remember (I remember)
기억나. 

Standing, by the wall (by the wall)
우린 벽 앞에 서 있었어.

And the guns, shot above our heads (over our heads)
총알이 우리 머리 위를 향해 빗발쳤지만, 

And we kissed, as though nothing could fall (nothing could fall)
우린 키스했지. 아무것도 우릴 무너뜨릴 수 없다는 듯이.




아무것도 막을 수 없던 사랑은 결국 작은 균열을 일으켰다. 10년 뒤 1987년 6월, 보위는 서베를린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행사장인 독일 국회의사당은 한자 스튜디오와 비슷하게 베를린 장벽에서 가까웠던 곳이었기 때문에 동베를린에서도 사람들이 페스티벌을 보러 몰려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보위는 공연 중 독일어로 벽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한다는 말과 함께 “Heroes”를 불렀다.


1987년 6월 6일 서독 서베를린 라이브. Glass Spider 투어.


공연이 끝난 뒤 곧바로 벽 반대편에서 반응이 나왔다. 벽을 허물라는 구호와 고르바초프가 언급되면서 순식간에 시위가 벌어졌고, 200명 가까이가 연행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뒤 벽은 정말로 무너졌다. 후일 이 사건은 벽에 균열을 일으키고 나아가 독일 재통일의 불씨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벽이 무너진 뒤에도 보위는 투어 때마다 통일된 베를린을 찾아 노래를 불렀다. 곡이 나온 지 25년 뒤인 2003년, 보위는 <Performing Songwriter> 지와의 인터뷰에서 곡의 진짜 배경을 밝혔다. 또한 1987년 국회의사당 공연도 회고했다.


그 공연은 잊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했던 가장 감동적인 공연 중 하나예요. 눈물범벅이 됐죠. 공연 주최 측이 장벽을 등지고 무대를 설치해서 장벽을 배경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동베를린 사람들이 공연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은 들었는데 얼마나 듣게 될지는 몰랐어요.
I’ll never forget that. It was one of the most emotional performances I’ve ever done. I was in tears. They’d backed up the stage to the wall itself so that the wall was acting as our backdrop. We kind of heard that a few of the East Berliners might actually get the chance to hear the thing, but we didn’t realize in what numbers they would.
실제로 수천 명이 벽 가까이 와 있었대요. 그러니까 벽을 가운데 두고 콘서트를 두 번 한 셈이 되겠죠. 반대편에서 환호와 합창을 들을 수 있었고요. 
And there were thousands on the other side that had come close to the wall. So it was like a double concert where the wall was the division. And we would hear them cheering and singing along from the other side.
세상에,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말문이 막혀요. 감정이 북받쳐 올라요. 그런 공연은 그때까지 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못 할 겁니다. “Heroes”를 연주하던 순간은 기도하는 것 같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요즘 공연할 때 이 곡을 잘해 내도 그 날처럼 연주하기 위한 연습 같다고 느껴요. 정말 많은 의미를 담은 공연이어서 그렇게 느끼는 거겠죠.
God, even now I get choked up. It was breaking my heart. I’d never done anything like that in my life, and I guess I never will again. When we did “Heroes” it really felt anthemic, almost like a prayer. However well we do it these days, it’s almost like walking through it compared to that night, because it meant so much more. 

- <Performing Songwriter> Issue 72, Sept/Oct 2003.


"Heroes"의 독일어 버전 "Helden".


그래서 보위, 특히 “Heroes”는 독일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Helden”이란 독일어 버전도 있다. 2016년 1월 그가 숨을 거두었을 때 한자 스튜디오 앞에 많은 이들이 모여 슬퍼했다. 독일 외무부 공식 트위터는 이렇게 슬픔을 표현했다.


"Good-bye, David Bowie. You are now among Heroes.
Thank you for helping to bring down the wall."
잘 가요, 데이비드 보위. 이제 영웅들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벽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Heroes”는 지금도 가장 많이 사랑받는 보위의 곡이며, 음악적 저변을 확대하려던 시도와 곡에 담긴 의미를 높게 평가받아 “Greatest Songs” 리스트에도 자주 올라간다. 다른 매체에 삽입되는 때도 많은데, 난 영화 <월플라워>에 실린 것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두 번 삽입되었는데 모두 터널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작중 별명이 'The Tunnel Song'이다. 찰리(로건 레먼), 패트릭(에즈라 밀러)과 함께 트럭을 타고 가던 샘(엠마 왓슨)은 우연히 “Heroes”를 듣는다. 기분이 좋아진 샘은 패트릭에게 터널로 차를 몰자고 조른다. 그에 넘어간 패트릭은 터널로 차를 몰고, 찰리는 트럭 뒤로 나가는 샘을 의아하게 쳐다본다. 샘은 팔을, 날개를 펼치고 자유를 만끽한다. “What’s she doing?” “Don’t Worry, She does it all the time.” 찰리는 그런 샘을 지그시 바라본다. 눈은 황홀감으로 젖었다.


찰리를 바라보며 패트릭이 묻는다. What? 찰리의 대답. “I Feel Infinite.”


이 장면은 엔딩 시퀀스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1년이 지나고 다시 만난 셋. 샘은 그토록 찾던 Tunnel Song을 알아냈다. 그때처럼 셋은 다시 터널로 향한다. 이번에는 찰리가 트럭 바깥으로 나간다. 날개를 쭉 펴고, 찰리는 자유로워진다. 세상이 다시 열린다.



I can see it. This one moment when you know you’re not a sad story, you are alive,
이제 알겠어. 네 삶이 슬프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이 순간. 네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이 순간.

and you stand up and see the lights on the buildings and everything that makes you wonder 
일어서서, 빛과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보는 이 순간.

and you listening that song on that drive with the people you love most in this world.
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그 노래를 듣는 이 순간.
and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 
단언컨대, 이 순간 우리는 무한해.


나는 이 곡에서, 이 영화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한편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 한자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이던 한 밴드는 거꾸로 위기를 맞았다. 분열 직전까지 갔던 밴드는 노래 한 곡을 만들면서 다시 하나가 되었다. 독일이 하나가 되었듯이. U2의 “One”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튜디오 버전은 여기서 들어보세요.

1985년 라이브 에이드 버전은 여기서 들어보세요.


2017년 12월 31일에 처음 쓴 글을 2021년 4월 16일에 수정했습니다.


배경화면 저작권: ©Sukita—Courtesy of Morrison Hote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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