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진지한 뮤지컬 이야기 3
이제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헤어>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요? 말씀드렸듯 <헤어>는 1960년대 젊은이들이 요구하던 문화적, 정치적 요소가 집약된 작품입니다. 우선 음악이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록 밴드 편성으로 변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글에서 해 드렸죠.
히피 문화의 외형적 특징을 반영했습니다.
반권위주의, 자유로운 마약 사용이란 히피 문화의 이념적 특징을 작품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반인종주의를 강조했고 반전주의와 평화주의 서사가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성 혁명과 연계된 제2물결 페미니즘의 영향도 뺄 수 없어요.
또 실험극 운동이 브로드웨이에 진입한 사례죠.
이 글에서는 히피 문화의 외형적 특징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히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1화에서 간단하게 설명해 드렸었죠?
<헤어>는 ‘트라이브(Tribe, 부족)’라는 뉴욕 히피 커뮤니티 집단의 이야기입니다. 리더 클로드, 버거, 우프, 디온, 지니, 실라, 크리시, 허드, 론 그리고 열다섯 명 전후의 트라이브 멤버들이 기다립니다. 극이 시작하면 느린 베이스 리듬과 함께 트라이브 멤버들이 무대로 걸어 나옵니다. 그리고 첫 번째 넘버 “Aquarius”가 시작하죠.
트라이브 멤버들의 겉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히피 그대로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긴 머리, 아시아 복식을 닮은 헐렁한 소매와 치렁치렁한 바지 밑단, 찢어진 청바지와 머리에 두른 머리띠 혹은 꽃. 가사 또한 히피가 꿈꾸었던 세상을 응축하고 있습니다. 금성부터 목성까지 모든 행성이 물병자리(Aquarius)에서 하나로 정렬하는 날,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고 평화가 오리라. 바야흐로 물병자리의 시대였죠.
<헤어>의 주인공은 클로드로 볼 수 있습니다. 트라이브의 리더로 ‘히피 문화를 향유하며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새로운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클로드: 지금은 1968년이에요, 부모님. 1948년이 아니라요.
This is 1968, dearies, not 1948.
엄마: 아이고 잘났다! 그래서 너희한테 뭐가 있는데? 좀 들어보자.
1968! What have you got, 1968? May I ask?
아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뭐가 있다고 우쭐거리냐? 머리 아파 죽겠네.
What have you got, 1968,
that makes you damn superior and gives me such a headache?
클로드: 그렇게 알고 싶으시다면... 보여드리죠.
Well, if you really want to know, 1948...
“I Got Life”
들으면 좋은 넘버는 “Ain’t Got No”와 "I Got Life"입니다. 기성세대의 물질과 가치관을 거부한 젊은 세대에게는 남은 게 거의 없었습니다. 가사 ‘Ain’t Got No’와 'I Got Life'를 반복하면서 이들은 물질을 거부하고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뒤 보기 좋은 모습까지 버리면서 히피로 다시 태어나죠. 멤버들은 세상에 굴하지 않고 유일하게 가진, 스스로의 몸을 자랑스럽게 내세웁니다.
둘은 순서로는 몇 곡 차이가 있는데, 뮤지션 니나 시몬은 이 둘의 궁합이 좋다고 생각해 두 곡을 붙여 커버 버전을 냈습니다. "Ain't Got No" 가사. 젊은 세대는 과연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뮤지컬 제목과 같은 이름인 "Hair"는 “I Got Life”와 비슷하게 '응답'하는 노래입니다. 머리를 길게 기르는 이유를 묻는 여행자에게, 클로드와 버거는 길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내보이며 자신들의 히피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긴 머리카락은 위의 말마따나 히피 문화의 상징이죠? 더불어 따라 부르기 쉬운 훅을 갖추고 있어서, 방송이나 페스티벌에 출연할 때 레퍼토리로도 활용됩니다.
위 영상을 보면서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혹시 이 영상을 보신 적이 있나요?
"Hair"는 배우 심형탁 씨가 불러서 유명해진 뚜찌빠찌뽀찌의 원곡입니다. <무한도전>에 소개됐으니, 한국에 <헤어>가 알려진 가장 유명한 사례일지도 모르겠네요.
다음 글에서는 히피 문화의 이념적 특징, 반권위주의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배경화면]
ⓒ Joan Mar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