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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Aug 15. 2023

기성세대에 날린 가운뎃손가락
- 반권위주의

어느 진지한 뮤지컬 이야기 4

<헤어>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요? 말씀드렸듯 <헤어>는 1960년대 젊은이들이 요구하던 문화적, 정치적 요소가 집약된 작품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히피 문화의 외형적 특징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음악이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록 밴드 편성으로 변했습니다.

히피 문화의 외형적 특징을 반영했습니다.

반권위주의, 자유로운 마약 사용이란 히피 문화의 이념적 특징을 작품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반인종주의를 강조했고 반전주의와 평화주의 서사가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성 혁명과 연계된 제2물결 페미니즘의 영향도 뺄 수 없어요.

또 실험극 운동이 브로드웨이에 진입한 사례죠.


이 글에서는 히피 문화의 이념적 특징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실험극 운동도 조금요.




주인공 집단 트라이브는 기성세대가 남긴, 따를 이유가 딱히 없는 '정상' 규범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마약. 코카인, 헤로인, LSD. 모두 세 번째 넘버인 “Hashish”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히피 문화와 마약은 가까웠습니다. 마약은 정신적 해방을 위한 도구로 칭송받았고, 마리화나와 LSD가 주목받았어요. 특히 LSD는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 1920~1996)라는 아이콘적 인물이 등장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집니다. 그가 제안한 슬로건은 이랬습니다. "Turn On, Tune In, Drop Out!" (마약) 해봐, (우리 커뮤니티에) 들어와, (기성 질서에서) 빠져나와!


이 문장은 그대로 “Be-in”의 가사로 쓰입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한데, 인간(Being)과 '들어와 함께 하자(Be in)’는 뜻이 담긴 중의적 언어입니다. 이 넘버에서는 캐스트와 관객이 한 자리에 모여 힌두교 신 크리슈나를 찬양합니다. 멤버들은 통로에 도열해 꽃과 향을 뿌리고, 무대의 경계는 객석 입구까지 확장됩니다. 신을 찬양하는 구호 '하레 크리슈나'는 마리화나로, 꽃과 자유, 행복으로 여러 차례 변주되죠.


히피 문화를 정책으로 수용한 정당 청년국제당(Youth International Party, Yippie)의 당기/영문 위키피디아


2막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모든 트라이브 멤버들이 환각 체험을 떠납니다. 넘버 제목은 "Walking in Space". 마약은 마음과 눈을 활짝 열어젖히고("Our eyes are open, Wide") 부드러운 구름 속에서 하늘을 걷는 기분("All the clouds are cumuloft, Walking in space")을 선사한다네요. 이 즐거움은 아무도 깨뜨리지 못할걸?("How dare they try to end this beauty?")이라고 대담하게 말하기까지 합니다.


LSD는 특히 창의성을 갈구한 뮤지션들에게서 환영받았습니다. LSD와 같은 환각성 약물을 정의하기 위해 사이키델릭(Psychedelic)이란 단어가 만들어졌고, 아예 1960년대에 유행한 록 음악 사조를 표현하는 단어가 됩니다. 마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면 따로 '애시드 록(Acid Rock)'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애시드 록의 대표곡,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White Rabbit" "Walking in Space"와 "Aquarius"를 애시드 록으로 보기도 합니다.


오리지널 캐스트의 "Walking in Space". 가사에 다양한 시대정신이 혼합되어 있다.


ⓒ Joan Marcus


다음 타깃은 권위였습니다. 특히 성조기에 걸린 권위요. 물론 모든 국가에서 국기를 중요한 상징으로 보호하지만, 미국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존재할 정도로 국기를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죠. 학생들이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맹세를 암송하는 모습을 드라마에서 한두 번쯤 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트라이브의 대답은 "그깟 깃발에 환장한 인간들"("Crazy for Blue, White, and Red")이었습니다. “Don’t Put It Down”에서 트라이브는 성조기를 놀이 도구로 삼아 타고 내려가거나 담요 삼아 덮습니다. 그럴 수 있던 원동력은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서 나왔습니다. 직접 읽어볼까요?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와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불만 사항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주한미국대사관 번역)


마지막으로 종교에 걸린 권위를 공격했습니다. 인도 여행을 떠난 비틀스처럼, 크리스트교에 기대를 접은 히피들은 그 대체재로 아시아 문화와 불교에 열렬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헤어>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작품 전반에서 가톨릭 권위는 끝없는 추락을 맛봅니다. 대신 "Don't Put It Down" 인트로에서 등장하는 '옴 마니 반메 훔'과 "Be-in"에서 외치는 구호 '하레 크리슈나'가 새 찬송가가 되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나타나듯 <헤어>는 실험 연극이 메인스트림에 진입한 사례였습니다. 무대 구조물은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바닥도 따로 장식을 하지 않아 거친 표면과 하얀 페인트가 그대로 보입니다. 대신 트라이브라는 이름을 얻은 앙상블이 위치와 안무를 통해 무대장치를 대신합니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멤버들은 좌석과 통로에서 종횡무진하며 관객과 같이 호흡하고 무대 위로 올라오도록 독려합니다. 이 기조는 이후 모든 공연에서, 심지어 시상식에서도 작동하는데요, 대표적인 넘버가 위에서 설명해 드린 "Be-in"입니다. 제4의 벽은 이 넘버에서 완전히 붕괴합니다.


1968년 <에드 설리번 쇼> 퍼포먼스. 파이프로 된 비계를 무대장치로 쓰고, 캐스트가 객석으로 달려나가는 걸 볼 수 있다.
2009년 토니상 시상식 오프닝넘버. 무대 위로 올라온 사람 중에는 <빌리 엘리어트>의 엘튼 존도 있다.



지금까지 몇 넘버를 소개해드렸죠. 원래 순서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위의 넘버 순서를 살펴보세요. <헤어>에는 작품을 이끌고 가는 힘 있는 서사가 없습니다. 많은 등장인물에 메시지가 파편처럼 나뉘어 있지요. 1막은 트라이브 멤버들이 판에 등장해 스스로를 소개하고 각자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구조입니다. 2막에서 클로드가 부각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트라이브가 함께 겪은 환각 체험으로 구성됩니다. 이들은 한 공동체로 모였을 뿐 한 이야기로는 묶이지 않았습니다.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많다 보니, 실험극단 출신 제작진은 중심 플롯을 짜기보다는 많은 등장인물에 메시지를 분배하는 전개가 더 낫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콘셉트 뮤지컬'이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성 혁명과 연계된 제2물결 페미니즘의 영향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배경화면]

ⓒ Joan Mar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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