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윤석 Aug 15. 2023

백인을 위해 죽긴 싫습니다만
- 반인종주의

어느 진지한 뮤지컬 이야기 6

<헤어>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요? 말씀드렸듯 <헤어>는 1960년대 젊은이들이 요구하던 문화적, 정치적 요소가 집약된 작품입니다. 지난 글부터는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첫 번째로 성 혁명과 연계된 제2물결 페미니즘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음악이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록 밴드 편성으로 변했습니다.

히피 문화의 외형적 특징을 반영했습니다.

반권위주의, 자유로운 마약 사용이란 히피 문화의 이념적 특징을 작품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반인종주의를 강조했고 반전주의와 평화주의 서사가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성 혁명과 연계된 제2물결 페미니즘의 영향도 뺄 수 없어요.

또 실험극 운동이 브로드웨이에 진입한 사례죠.


이 글에서는 반인종주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60년대 미국은 다른 사회운동으로도 유명하죠. 바로 흑인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입니다. <헤어>도 민권 운동의 세례를 받았고, 반인종주의를 주장한 작품이었어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씀드린, 2막의 "Black Boys"와 "White Boys"를 다시 들어 보겠습니다.


오리지널 웨스트엔드 캐스트의 "Black Boys"와 "White Boys".


가사를 들으셨나요? "Black boys are so damn yummy, They satisfy my tummy." "Give me a strong, a lean, A sexy, a sweet, A pretty, a juicy White boy." 이른바 '빠꾸 없이' 섹슈얼한 가사도 놀랍지만, 이 노래에는 놀라운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앞의 가사는 백인이, 뒤의 가사는 흑인이 불렀거든요. 다른 인종을 이야기한 겁니다. 2020년대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1960년대 미국 남부에선 죽을죄였습니다. 인종과 성별을 불문하고 그 사람은 많은 걸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 했어요. 목숨까지도!


What do we think is really great?
To bomb, lynch, and segregate!
진짜 미국의 자랑거리?
폭격, 린치, 흑백 분리!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된 건 1967년 6월이었어요. 밀드레드(Mildred Loving, 1939~2008)와 리처드 러빙(Richard Loving, 1933~1975) 부부가 연방대법원에서 ‘인종 간 결혼 금지는 위헌’이란 판결을 받아냈거든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러빙>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헤어>가 초연되기 고작 4개월 전이었습니다.


(좌) 폴 로브슨/영문 위키피디아 (우) 왼쪽이 밀드레드 러빙. 오른쪽은 배우자 리처드/AP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란 유명한 연설을 했죠. 그 결과 1964년 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이 제정되면서 흑인을 비롯한 비백인의 투표권이 법으로 보장됐어요. 그래서 세상이 바뀌었느냐고요? 아니요. 여전히 흑인은 백인보다 더 빈곤했고요, 베트남 전쟁에서는 실제 인구 비율보다 더 높게 징집돼 전사했어요.


1968년에 흑인 사회는 한창 들끓고 있었는데요, 먼저 4월에 킹이 암살당했어요. <헤어>가 브로드웨이에 오르기 불과 3주 전이었어요. 그러자 비폭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분노가 힘을 얻기 시작했어요. 흑인의 자기방어권을 주장하면서 무기를 들자고 주장한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죠.


북부는 남부보단 인종차별이 덜한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깔끔하게 평등하지도 않았어요. 브로드웨이 업계에서 흑인은 여전히 기회를 받지 못했어요. 기회를 받아도 오랜 고난에 지친 인물이라는 전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요. 그래서 폴 로브슨(Paul Robeson, 1898~1976)이란 당대 최고의 배우는 가사에 묘사된 흑인 인물상을 거부하고 계속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했어요.


수난도 있었어요. 로레인 한스베리(Lorraine Hansberry, 1930~1965)는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작품을 올린 흑인 극작가‘라는 영예를 얻은 대신 작품 <태양 아래 건포도(A Raisin in the Sun)>가 검열로 무자비하게 찢기는, 큰 상처를 감수해야 했어요.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사진 속의 인종과 성별 구성을 살펴보자/플레이빌


<헤어>는 인종주의에 강경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첫 넘버 "Aquarius"에서 트라이브를 이끄는 사람은 흑인이에요(오리지널에서는 남자인 론이, 이후 연출에서는 여자인 디온이 이끌어요). 흑인 트라이브 멤버가 전체 3분의 1을 넘겼고요. 1막에 나오는 "Colored Spade"는 흑인에 걸린 여러 편견을 웃으면서 받아넘기는 내용인데, 그런 내용은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었어요. 2막에서는 더 대담한 내용이 나와요. 난 백인들을 위해 죽지 않겠어!("I ain't dyin' for no white man!") 최소한 무대 위에서 흑인은 다른 인간과 평등했어요.


"Black Boys"와 "White Boys"는 노래의 주체가 흑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 빛을 발해요. 한스베리와 러빙, 영화 <히든 피겨스>처럼 흑인 여성들이 변화를 만들어냈음에도 여성이 민권운동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에요. 디온이라는 등장인물과, '난 백인들을 위해 죽지 않겠어!'를 말하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은 <헤어>에서 흑인 여성이 최소한의 발언권을 확보했음을 보여줘요.


다만 제가 보기에 <헤어>가 기존 테두리를 완벽하게 깬 파천황은 아니었어요. 밑에서 설명드리겠지만 작품은 백인 남성인 클로드의 이야기로 귀결되고요, 핵심 제작진과 트라이브 멤버에 백인 & 남성이 더 많았어요. 주요 제작진 여덟 명 중 여성은 두 명, 안무가 줄리 아르널(Julie Arenal)과 의상 담당 낸시 포츠(Nancy Potts)였어요.


또 <헤어>는 이상에만 치중했어요. 평등한 트라이브 사회만을 보여줬을 뿐이지, 현실에서 어떻게 차별을 해소할 것인지는 관심이 없었어요. 당대 여성의 주요 요구사항도 마찬가지로 잘 언급하지 않았어요. (다만 50년 뒤의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고, <헤어>가 운동이 본격 진행되기 전에 나타났다는 점은 생각해야겠죠.)


저는 시대가 변한 만큼, 트라이브 구성과 연출에 변화를 주면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흑인 클로드 벤 버린(Ben Vereen, 1945~)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기용됐고, 2009년 리바이벌은 여성 다이앤 파울루스(Diane Paulus, 1966~. <웨이트리스>, <재기드 리틀 필> 연출)가 연출했어요.


다음 글에서는 반전주의와 평화주의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의 마지막 글입니다.


[배경화면]

ⓒ Hulton Archive/Getty Images, David "Dee" Delgado/Getty Images

출처: Olivia B. Waxman. 10 Experts on Where the George Floyd Protests Fit Into American History. Time, June 4, 2020.

이전 05화 "침대에선 죄를 짓지 않아" - 성 혁명과 페미니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