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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Aug 15. 2023

'더러운 전쟁'과 3500  - 반전주의

어느 진지한 뮤지컬 이야기 7

<헤어>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요? 말씀드렸듯 <헤어>는 1960년대 젊은이들이 요구하던 문화적, 정치적 요소가 집약된 작품입니다. 지난 글부터는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직전에는 두 번째로 반인종주의 설명해 드렸습니다.


음악이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록 밴드 편성으로 변했습니다.

히피 문화의 외형적 특징을 반영했습니다.

반권위주의, 자유로운 마약 사용이란 히피 문화의 이념적 특징을 작품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반인종주의를 강조했고 반전주의와 평화주의 서사가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성 혁명과 연계된 제2물결 페미니즘의 영향도 뺄 수 없어요.

실험극 운동이 브로드웨이에 진입한 사례죠.


이 글에서는 반전주의와 평화주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마침내 끝판왕이 왔습니다. <헤어>의 가장 큰 메시지는 반전과 평화였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모든 사회 이슈를 잡아먹은 시기였고, 그 최전선에 <헤어>가 있었어요.


1950년대부터 미국 정부는 베트남에 개입했어요. 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인 북베트남과 자본주의 체제인 남베트남으로 분단돼 전쟁을 치르고 있었어요. 당연히 미국 정부는 남베트남을 지원했죠. 1965년부터는 아예 현지로 병력을 파견해 북베트남과 직접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어요. 동남아시아에서 한 국가가 공산화되면 다른 국가들도 연쇄적으로 공산화될 수 있다는 논리, '도미노 이론'이 근거였죠.


해병대 3500명(이 숫자는 작품에서도 중요하게 등장해요)이 처음 파병됐고, 징병제를 실시해 매달 수만 명을 베트남으로 보냈어요. 군은 대규모 폭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 적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통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북베트남군과 게릴라 조직의 전략에 말려 들어갔죠. 그러자 정부는 파병 규모는 축소 발표하고 전쟁에 참여한 목적과 성과만을 홍보하기로 했어요.


1967년 10월. 반전 시위에서 헌병이 겨눈 총구에 꽃을 꽂는 반전 시위대. ⓒ Getty Images/The Washington Post


젊은 세대는 전쟁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냉전과 함께 태어났고, 내일 바로 핵전쟁이 일어나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어릴 적에 쿠바 미사일 위기로 경험했거든요. 전쟁이 애초에 명분이 빈약하기도 했어요.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개입해 민간인 사상자를 낳는 정부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었거든요. 더불어 징병제의 폐단이 드러났어요. 기득권층 남성은 대학생 신분이나 배경을 무기로 징집을 피했고요, 대신 비백인과 학력이 낮은 백인이 끌려가야 했기 때문이에요. 재미있게도 반전 운동을 시작한 집단 또한 대학생이었어요. 이들은 자신에게 온 징병 통지서를 불태우는 행동으로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표현했어요.


언론인 월터 크롱카이트. CBS에서 뉴스 앵커로 재직하며 공정 보도로 존경을 받았다. 1968년 베트남을 다녀온 그는 뉴스 클로징 멘트에서 전쟁을 끝낼 것을 주장한다.


점점 안 좋아지는 사태에 기름을 부은 건 컬러 텔레비전이었어요. 때마침 텔레비전이 미국 중산층 가정에 널리 보급됐고, 방송사들이 텔레비전 저널리즘을 시작하면서 전쟁 소식을 집에서 들을 수 있게 됐거든요. 1968년 일어난 구정 대공세가 계기가 됐어요.


1968년 음력설에 북베트남 게릴라 조직은 '설에는 휴전한다'라는 합의를 깨고 남베트남 전역을 공격했는데요, 당시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도 공격을 받아 미국 대사관이 잠시 점령당하기까지 했거든요. 이게 텔레비전으로 보도된 거예요. 이때 AP의 사진기자 에디 애덤스는 사이공 시내에서 이루어진 즉결 처형을 촬영했고(맨 위에서 볼 수 있는 사진) 사진이 <뉴욕 타임스> 1면에 보도됐어요.


이제 미국인들은 베트남 전쟁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반전 운동은 <헤어>가 처음 제작될 때는 갓 떡잎이 난 운동에 불과했지만, 브로드웨이에 올라갈 즈음에는 단단한 나무가 되어 있었어요. 트라이브가 다 같이 모여 부르는 구호를 볼까요?


What do we want? Peace!
When do we want it? Now!
What do we want? Freedom!
When do we want it? Now!
Peace Now! Freedom Now!
Peace Now! Freedom Now!

"Ain't Got No (reprise)"
Hell no, We won't go!
Hell no, We won't go!


작품 전체의 주인공 클로드는 사실 징집영장을 받은 처지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전부 전쟁에 반대하지만, 자신은 부모님(& 기성세대)의 강권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합니다. “Be-in”에서 친구들과 징병 통지서를 불태우기 직전, 클로드는 화로에 집어넣으려던 통지서를 뺍니다. 그리고 번민하죠. 1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Where Do I Go?"를 부릅니다.


1979년 영화 버전의 "Where Do I Go?".


Where do I go, Follow the river, Where do I go, Follow the gulls
어디로 가야 할까, 물이 흘러가는 대로? 갈매기의 날개를 따라?
Where is the something, Where is the someone, That tells me why I live and die
내가 살고 죽는 이유, 어디 있을까, 누가 알려줄 수 있을까?
Follow the wind song, Follow the thunder, Follow the neon in young lovers' eyes
바람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천둥이 내뿜는 일갈을 좇아, 사랑에 빠진 눈에 서린 빛을 찾아
Down to the gutter, Up to the glitter, Into the city where the truth lies
어두운 골목에서, 네온사인 아래로, 진리가 깔린 도시 거리를 헤매네.


전쟁이 낳는 비극은 2막의 “Three-Five-Zero-Zero”에서 크게 강조됩니다. 클로드는 1막과 2막 사이에서 징병검사를 받고 돌아옵니다. 트라이브는 그를 기쁘게 맞이하며 다 같이 환각 체험을 떠나는데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잔혹한 환상을 목도합니다. 환상 마지막에 나타난 건 군인들이 모두를 쏘아 죽인 다음 서로에게 총구를 돌리는 모습이었고요. 그런데 그 옆에 한 하사와 중년 부부가 걸어 들어옵니다. 하사는 징병관이고, 중년 부부는 클로드의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은 클로드에게 입대하라고 종용해요.


"Three-Five-Zero-Zero"는 기괴한 노래예요. 노래는 폭발과 총성을 상징하는 둔탁한 드럼과 뚝뚝 끊기는 기타로 시작하고, 트라이브 멤버들은 비장한 자세로 전쟁의 참혹함을 노래해요. 그런데 멜로디가 활기차게 바뀌더니 뛰놀기 시작해요. 그리고 다 죽여 버려야 한다고 말하죠.


노래 제목인 '3500'은 미군이 베트남에 처음으로 파병한 지상병력의 수이자, 사살한 적군의 수만으로 작전의 성공을 가늠하던 미군이 무미건조하게 말하던 목표였어요. 무의미한 살상과 병력 투입을 비판하는 외침을 보고, 저는 허무를 넘어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환각에서 깨어난 클로드는 포기하듯 사라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입대해 베트남으로 떠나요.


트라이브가 여느 때처럼 반전 시위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클로드가 보이지 않습니다. 멤버들이 그를 찾는 사이 군복을 입은 클로드가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옵니다. 하지만 트라이브 멤버들 아무도 그걸 알지 못해요. 그는 바라던 대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베트남에서 전사하고 말았던 겁니다. 클로드가 뮤지컬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넘버를 시작합니다. 제목은 "Let the Sunshine in"입니다.


1969년 토니상 퍼포먼스. 위 퍼포먼스에 1곡이 추가돼 있다.
1979년 영화 버전.


“Let the Sunshine in”은 박수가 가득한 노래지만, 저는 캐스트의 눈에서 분노를 읽었습니다. 이 넘버는 클로드의 장례식이자, 관객에게 각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자리입니다. 세상을 떠난 클로드에게 빛(Sunshine in)을, 객석에서 일어나 극장 바깥으로 나갈 관객에게 빛이 가득한 세상을 건설하라(Sun Shine in)는 호소가 되죠. 재미있게도 곡 해석은 나라마다 달랐어요. 웨스트엔드 버전에서는 블루스의 영향으로 애도와 비탄의 느낌이 강하고, 브로드웨이 버전은 박자가 빨라지며 반전과 평화를 강조하죠.


절규와 눈물 속에, 클로드의 시신 위에 미국 국기가 덮입니다. 그를 뒤로 하고 <헤어>는 끝이 나요.




두 번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이제 세 번째 이야기, [<헤어>는 무엇을 남겼을까요?]를 시작하겠습니다. <헤어>가 거둔 성공, 세상에 끼친 영향, 그리고 바꾸지 못한 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배경화면]

ⓒ Eddie Addams/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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