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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Aug 15. 2023

<헤어>가 거둔 성공

어느 진지한 뮤지컬 이야기 8

이제 세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헤어>는 무엇을 남겼을까요? 큰 성공을 남겼고, 사회와 뮤지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염원했던 것과 달리 바꾸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하나씩 짚어보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먼저 <헤어>가 거둔 성적과, 성공 이후의 이야기를 설명해 드릴게요.




<헤어>는 확실하게 성공했습니다. 1년 버티기도 힘든 브로드웨이에서 1972년까지 4년을 버티면서 1,750번 공연했어요. 공연 횟수는 폐막 당시 뮤지컬 역대 8위였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는 순위가 좀 밀렸지만, 그래도 역대 46위인 대단한 작품입니다. 개막 1년 만에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대륙에서 공연이 열렸어요. 커버곡 4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TOP 10에 들었어요. 작곡가 맥더못이 록에만 머무르지 않고 재즈부터 펑크(Funk)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덕이었죠. 수익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The 5th Dimension의 커버곡 "Aquarius / Let the Sunshine In (The Flesh Failures)". 1969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성공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뉴욕의 젊은 관객들이 원했던 건 <헤어>에 있었고 다른 작품에는 없었어요. 기존 브로드웨이 문법과는 전혀 다른 신선함. 고루한 기성세대에 날리는 일갈. 우리가 원하던 가치를 대변하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록 음악. 단순하고 강력하면서도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 전쟁, 성차별, 인종차별을 비롯한 세상 모든 불의에 대항해 뚫고 올라오는 에너지까지.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 클라이브 반스(Clive Barnes, 1927~2008)는 브로드웨이 개막 다음 날 기고한 평론에서 이렇게 썼어요.


<헤어>는 오랜만에 나타난, 과거의 목소리를 담기보다는
이 시대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데 주력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The show is the first Broadway musical in some time to have
the authentic voice of today rather than the day before yesterday.




<헤어>는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린 뒤 영화로 만들어졌고, 브로드웨이에 다시 오르기도 했어요.

영화 <헤어> 포스터/IMDB


1979년에 영화로 제작됐어요. 감독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밀로스 포먼(Milos Forman, 1932~2018). 영화로 각색하면서 중심 서사를 갖추기 위해 캐릭터와 줄거리를 바꿨어요. 넘버도 다수 편집됐고요. 클로드는 징집영장을 받았다는 설정만 남기고 트라이브 외부에서 왔다고 처리했고요, 대신 캐릭터는 버거에게 넘겼어요. 개작에는 래그니와 레이도의 허락이 없었어요. 결과물마저도 원작의 가치에서 후퇴했다고 본 둘은 영화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해요. 맥더못은 참여했어요. (2023년 8월 현재 영화는 웨이브, 왓챠 등에서 볼 수 있어요.)


2009년에 다시 브로드웨이에 올라왔어요. 40년 전 초연에서는 토니상을 받지 못했는데, 이때는 토니상을 결국 따냈어요(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 2008년 일어난 경제위기로 좋은 흥행 여건이 아니었음에도 1년 넘게 브로드웨이에서 머무르며 손익분기점을 빠르게 넘겼습니다. 2010년대에는 텔레비전에 올라올 뻔했어요. 미국 방송계에서 뮤지컬을 텔레비전 라이브로 공연하는 붐이 한때 일었거든요. NBC가 2019년에 <헤어>를 선보이려고 했었는데, 전작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평이 별로였고 Fox에서 제작한 <렌트>가 보란 듯이 혹평을 들었어요. 결국 취소되고 말았답니다.


아쉽게도 <헤어> 제작진은 대체로 성공을 재현하지 못했어요. 래그니와 맥더못은 협업을 이어나갔지만 작품들은 하나같이 브로드웨이에서 흥행 참패를 거뒀어요. 래그니는 일찍 브로드웨이 커리어를 마감하고 1991년 암으로 사망했어요. 맥더못은 토니상을 한 번 더 받은 뒤 200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했어요. 유명 힙합 뮤지션들이 샘플링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2018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호건은 <지크슈>의 브로드웨이 초연 연출을 맡아 다시금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후에는 실험 연극계에 남아 활동하다 2009년 타계했고요, 레이도도 2022년 세상을 떠나면서 <헤어>의 주요 제작진은 이제 모두 고인이 됐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헤어>가 사회와 뮤지컬 업계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배경화면]

ⓒ Joan Mar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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