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는 무엇을 남겼을까요? 큰 성공을 남겼고, 사회와 뮤지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염원했던 것과 달리 바꾸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하나씩 짚어보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엔 영향입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한 뮤지컬답게 <헤어>는 세상에 남긴 게 많아요. 사회에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중요한 판례를 남겼고, 뮤지컬 업계에는 세 가지 유산을 남겼습니다.
앞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헤어>는 권위에 돌진한 작품이었어요. 기성세대의 가치를 깡그리 부쉈죠. 급진성과 파격성을 참지 못한 기성세대는 공연 금지, 대관 취소, 또는 공연장에 불 지르기로 대응했어요. 그러나 법원은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공연을 보호했어요. 수정헌법 1조가 어떤 내용인지는 반권위주의 편에서 설명해 드렸었죠. 이와 연결된 여러 사건을 소개합니다.
1970년, 매사추세츠 주정부와 보스턴 지역 프로덕션 사이에 공연 금지를 두고 소송이 벌어졌습니다. 주 대법원이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공연을 허가하자 주 검찰이 상고했는데, 연방대법원이 기각해 공연을 올릴 수 있게 됐어요(PBIC, INC. v. Byrne 사건).
"Don't Put It Down"에서 성조기를 가지고 놀고, '그깟 깃발'이라고 불렀다고 말씀드렸죠. 트라이브만 이 생각을 한 것은 아니어서, 성조기는 반전 시위에서 자주 불태워졌어요. 애국과 참전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에 항의해서였죠. 그러자 연방의회는 아예 성조기보호법(Flag Protection Act)을 제정했어요. 국기를 모독하면 처벌하려고 했죠. 그러자 다시 연방대법원이 등장합니다. 연방대법원은 1989년과 90년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이 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어요. 법은 결국 폐지됐습니다.
영국에서는 240년 동안 존재하던 공연 검열관 제도가 1968년 공연법 개정으로 폐지되어 그 직후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이 개막할 수 있었어요. <헤어> 개막을 다룬 BBC 리포트
(좌) 스티븐 손드하임 ⓒ Yousuf Karsh (우) 왼쪽에 팀 라이스, 오른쪽에 앤드루 로이드 웨버/Getty Images
뮤지컬에 남긴 유산은 콘셉트 뮤지컬. 오프 브로드웨이의 재발견. 록 뮤지컬이에요.
<헤어>는 중심 서사가 없고, 이야기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작품이라고 설명해 드렸죠. 이런 콘셉트 뮤지컬을 <헤어>가 브로드웨이에 소개했어요. <헤어>가 올라왔을 때는 따로 표현은 없었는데, 1970년 스티븐 손드하임의 <컴퍼니>와 <폴리스>가 제작되면서 비로소 '콘셉트 뮤지컬'로 명명됐어요. 이후 손드하임은 <스위니 토드>, <인투 더 우즈> 같은 작품을 쓰며 전설이 됐고요, <시카고>, <캣츠>, <애비뉴 큐> 같은 유명한 작품에서도 콘셉트 뮤지컬이 쓰였어요. <코러스 라인>도 있고요.
그중 <코러스 라인>은 바로 조셉 팝의 퍼블릭 시어터에서 초연된 작품이었어요. 조셉 팝. 바로 <헤어>를 발굴한 사람이었죠? 비영리 공연단체가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작품을 발굴하여 브로드웨이에 가져가, 그 수익으로 다시 새 뮤지컬을 제작하는 모델이 바로 <헤어>에서 시작했어요. 창작자들은 오프 브로드웨이, 또는 오프오프 공연을 통해 작품을 다듬으며 브로드웨이를 준비하죠.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이 과정은 <헤어>가 개척한 거예요. 이름만 들어도 전율이 오는, 많은 작품들이 이 길을 따라 브로드웨이로 나왔어요. <애비뉴 큐>, <스프링 어웨이크닝>, <펀 홈>, <해밀턴>, <디어 에반 핸슨>. 무엇보다 <렌트>.
(좌) 조너선 라슨. 출처: 플레이빌. (우) <렌트>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뮤지컬 업계에서 록 뮤지컬 붐이 일었습니다. <헤어>가 쌓은 장작에 1971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불을 붙였습니다. 같은 해 스티븐 슈워츠(바로 <위키드>의 작곡가죠)의 <갓스펠>이 호평을 받았고 맥더못은 셰익스피어의 <베로나의 두 신사>를 록으로 옮겨 토니상을 탔어요. 결과 1970년대에 <록키 호러 쇼>, <그리스>, <더 위즈> 같은 록, R&B, 소울 뮤지컬이 풍성하게 제작되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메가 뮤지컬 시대가 도래하면서 록은 브로드웨이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말았어요.
록 뮤지컬은 1996년, 손드하임을 존경했던 조너선 라슨의 <렌트>로 부활합니다. <렌트>는 <헤어>와 <코러스 라인> 이후 처음으로 젊은 관객들의 의문에 응답하고 같이 숨 쉬었던 작품이었어요. 1960년대의 가치가 반전주의였다면 1990년대의 가치는 에이즈, 성소수자, 도시의 가난이었습니다. 재미있게도, <렌트>를 구상하면서 라슨은 작품을 ‘90년대의 <헤어>’로 생각했어요. 실제 평단의 반응도 그랬고요. 우연의 일치로 두 작품은 브로드웨이 개막일이 4월 29일로 같습니다. (라슨을 다룬 영화 <틱, 틱... 붐!>에서 "Let the Sunshine In"이 잠깐 흘러나오기도 하고요.)
라슨은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렌트>는 12년을 공연하며 살아남았습니다. 록 뮤지컬도 덩달아 생명을 되찾았어요. 1998년 <헤드윅>이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뒤 영화로 만들어졌고, <렌트>가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릴 즈음에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넥스트 투 노멀>이 나타났습니다.
(좌) <에비타> 일레인 페이지 (우) <록키 호러 픽처 쇼> 리처드 오브라이언 & 팀 커리/Getty Images
그러다 보니 <헤어> 출연진이 다른 록 뮤지컬에 출연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습니다. 1971년 <지크슈>의 브로드웨이 초연은 주역(유다를 맡은 벤 버린)과 연출(오호건)을 그대로 뜯어 온 수준이었어요. <헤어> 웨스트코스트 프로덕션엔 <지크슈>의 예수로 유명한 테드 닐리, 그리고 <Bat Out of Hell>로 이름을 떨치는 미트로프가 있었습니다. 팀 커리는 <헤어>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에서 <록키 호러 쇼>의 원작자 리처드 오브라이언을 만났고, 미트로프와 함께 <록키 호러 쇼>에 참여합니다. 팀 커리의 <헤어> 참여 당시 프랑스어 인터뷰
<헤어>를 거쳐간 유명 배우는 더 있어요.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에는 아카데미상 수상자 다이앤 키튼이, 웨스트엔드에는 <캣츠>의 그리자벨라 일레인 페이지가 있었습니다. 'The Queen of Disco' 도나 서머는 독일 프로덕션에서 정식으로 데뷔했고요.
다음 글에서는 <헤어>가 바꾸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마지막 글입니다.
[배경화면]
<렌트>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출처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