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부산에서
사실 헤어지고 나서 우리가 함께 갔던 카페에 혼자 갔었어. 우연히라도 마주치길 바랐던 걸까.
광주에서 부산까지 거리는 참 먼데 그날따라 너무 마음이 헛헛한 거야. 이대로 집에 가면 깊은 우울에 빠져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날. 자주 가는 곡성 책방에서 나와서 무작정 그 카페를 검색하고 300km 가까이 되는 길을 운전했어. 근데 이상하게 마음이 괜찮아지더라. 설레기도 하고.
무려 3시간 반이 넘게 걸려서 그 카페에 도착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여름에 함께 그곳에 갔다가 내가 가을에 또 오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해 가을엔 함께 가지 못했지만. 그렇게 당신이랑 앉았던 자리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다 나왔어. 그 카페 풍경은 여전히 예쁘더라. 어쩌다 보니 당신이 자주 간다던 시간이었는데 익숙한 실루엣은 보이지 않았어.
부산을 다녀와서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 이젠 더 이상 그곳에 뜨겁게 사랑했던 서로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어. 그리고 한참이 지나 내가 왜 부산을 갔을 때 당신이 더 보고 싶었는지 알게 됐어.
최근에 <우연일까?>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어느 날 여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다른 남자를 보러 먼 길을 가게 돼. 근데 여자가 갑자기 펑펑 우는 거야. 짝사랑하는 그를 만나지 못해서. 식당 사장님이 그걸 보더니 “멀리 있으면 슬프지도 않지. 얼굴 보러 먼 길 달려왔는데 못 보면 마음이 미어지지, 알지 그 마음”이라고 하는 거야. 그 장면을 보는데 아 내 마음이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당신은 내가 책 좋아하는 걸 알고 그런 서정적인 카페를 자주 데려갔잖아. 난 참 좋았다. 근데 풍경이랑 카페가 좋았던 거 말고 우리가 함께여서 더 좋았던 거였어. 이제 더 이상 그곳에 우리는 없지만, 아름답게 사랑했던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괜찮아. 이별 후에 버텨내는 시간은 각자의 몫이니까.
이제는 그 시간마저 흐려져간다. 그때 우리는 참 아름답게 사랑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