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유전이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고 커피가 괜찮아 보이는 모 카페를 갔다. 카페 공간에는 직접 키우는 토끼가 한 마리 있었고 한 어린아이가 집요하게 구석구석 토끼를 따라다녔다. 토끼는 단순히 위치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도망 다니고 있었다. "이리 와, 그만해" 부모는 먼 곳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수다를 떨었다. 카페 주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후 손님이 조금씩 늘었고 아이들도 늘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토끼를 쫓아다녔고 어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토끼는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이었고, 부모들에게는 본인들의 자유시간을 확보하게 하는 탈출구였고, 카페에게는 좋은 마케팅 수단이었다. 토끼 빼고 모두 윈윈이었다. 이런 상황이 불편해서 카페 측에 토끼가 너무 불쌍한데 케어할 수 있는지 물었다. 졸리면 케이지에 가서 잔다는 답변을 들었다. 토끼는 생물학적으로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것이 더 익숙한 동물이라는 얘기를 하려다, 싸움을 거는 것 같아 돌아섰다. 기차 시간이 다 되어 씁쓸한 마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며칠 전 라디오스타에 박위라는 유튜버가 나왔다. 박위는 휠체어를 타야 하는 사람이며 이로 인한 일상에서의 불편함을 소재로 다루기도 한다. 그러면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중의 행동을 개선할 만한 메시지를 던진다. 진정한 영향력을 가진 유튜버라고 생각하는데 최근 국내와 오스트리아에서의 휠체어 이용자를 대하는 차이를 말하며 오스트리아인들의 '통념' (한국에서는 '배려'이지만) 수준에 대한 부러움을 언급했다. 모든 유럽인의 의식이 높고, 모든 한국인의 의식이 낮은 것은 아니겠지만, 나 역시 장애인이 살기에 유럽이 한국보다 더 수월할 것이라는 것을 사회제도, 대중의 인식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상대적으로 생존에 불리한 생명체 (약자)에 대한 배려와 통념에 대한 우리와 그들의 생각 차이는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토끼는 온순하고 너무 귀엽고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아쉽게도,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전혀 다른 시간이 대체해 버렸다. 나도 츄를 입양하기 전에는, 누나가 조카를 품기 전에는, 생명이니 뭐니 몰랐다. 비둘기 쫓아내기를 일삼았고 아이들도 임산부나 어르신처럼 자리 양보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왜 이런 어른이 되었을까? 우리는 왜 토끼, 앵무새, 개, 고양이를 이용해 돈을 벌거나 즐거움을 사야 하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몇 해 전, 꽤 가까운 친척이, 왜 굳이 야생에 있는 개를 데려다 키우면서 사람에게 길들이느냐는 질문을 위장한 조소를 던졌다. 최소 10,000년이 넘은 인간과 개의 관계를 논하거나, 그러면 댁에 있는 화분의 식물을 뽑아 산에 다시 심어 놓으라는 일갈 대신 침묵했지만, 사실 내 포인트는 그런 것은 아니다. 토끼를 마케팅에 써먹어야 한다면, 적어도 토끼의 습성은 알고 있어야 하며, 수명을 줄일 만한 치명적인 요인들은 최소화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리고 경험상, 각박함은 사랑스러운 자식에게 충분히 유전될 만한 요소라는 사실을, 다들 알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