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맛 물씬
아산으로 귀촌한 이후, 시골 일상을 제대로 즐기자는 마음으로 기업형 마트보다는 전통 시장에 가고 있다. 왕복으로 한 시간이지만 바람도 쐴 겸, 시동을 걸고 구매 목록을 되뇐다. 간식으로 호떡을 먹을지, 튀김을 먹을지, 현금과 장바구니는 제대로 챙겼는지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부부의 마음은 이미 시장 골목에 들어섰다. 유난히 삐뚤삐뚤하게 세워진 차량이 많은 주차장에 어렵사리 한자리 차지하고 본격적으로 옮기는 걸음이 괜히 비장하다. 우리 같은 시골 풋내기들에게 전통 시장은 만만치가 않다.
허벅지를 툭 치고 지나가는 어르신들의 보행 보조차, 시선과 일치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다가와 불쾌하게 스치는 어깨와 팔꿈치들, 차라리 연기가 낫다 싶은 정도의 담배 절은 내, 고르지 못한 보행로와 왠지 더 불결해 보이는 검게 고인 물, 카드 결제를 반기지 않는 상인들의 표정, 가끔은 용기가 필요할 정도로 거친 말투와 태도. 전통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일이 처음부터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반면, 대형마트와 비교할 수 없는 매력적인 가격과 기대하지 않았던 덤, 마음이 맞는 상인과의 유쾌한 농담 그리고 이 모든 현장감이 주는 생동감이 우리를 시장으로 향하게 했다.
구매 목록에 적힌 마지막 반찬을 계산하며, 옆 상점 진열대를 힐끔 쳐다본다. 머리를 굴리며 필요성을 강제해 보지만 작은 반대가 일어 체념한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고함이 들리면 ‘싸움이라도 난 걸까?’ 몸을 돌려세운다. 별일 없어 보인다. 얼굴 가까이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우리 품에 안긴 아기를 보고 지나가는 어르신이 “딸이야, 아들이야?” 물으며 흐뭇하게 웃으신다. 점잔 빼던 상인 아저씨도 기다렸다는 듯이 잠시 결제를 멈추고 미소 지으며 “그러게, 너무 귀엽네. 요즘 아기가 참 귀하지.” 하신다. 아기 칭찬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우리도 아기 목소리를 흉내 내며 “감사합니다” 대답한다. 반찬을 조금 더 챙겨 주신다. “다음에 또 오자.” 곧 잊힐 계획을 아내와 속삭이며 걸음을 옮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말부터는 온전히 장만 보는 것이 더 어렵다. 오래 끓인 어묵 국물, 갓 튀겨진 꽈배기, 짙은 수증기를 뿜는 찐빵과 만두가 눈과 코를 잡아 끌어 고개를 돌려세운다.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한 척, 오른손은 이미 지갑을 찾고 있다. 오늘은 호떡이다. 반으로 접혀 흑설탕색 꿀이 터져 흐르는 호떡의 가장자리부터 소심하게 깨문다. 경박하게 오물거리며 아내와 눈빛을 교환한다. 미간에 생긴 주름만큼 호떡 반죽은 쫀득거리고 꿀은 달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손에는 언제나 꿀이 묻는다. 휴지로 쓱 닦아내고 엄청난 일을 끝낸 양 길을 나선다.
구매 임무를 완수하고 시장기를 잠재우니 긴장이 풀린다. 시장 지붕이 잠시 끊기는 교차로에 좁고 긴 햇빛이 쏟아진다. 살짝 풀린 눈으로 아무렇게 고개를 돌리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빛바랜 화장품 포스터, 먼지 쌓인 제품 박스, 소화 불가능해 보이는 디자인의 옷들. 도시의 시계보다 한참 느린 것 같은 풍경들이 처음에는 촌스러웠는데 이제는 정겹다.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크기의 흡연 과태료 경고문이 붙은 공중화장실 앞에는 보건 규정은 모르지만, 인생 사는 법은 통달한 것 같은 표정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싸구려 담배를 태운다. 온천의 도시를 티 내기 위해 설치한 무상 족욕장은 북적거려도 태평하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카트를 방패 삼아 성의 없이 전진하며 레토르트 식품 위주의 구매 목록을 빠르게 처리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줄이 짧은 계산대를 찾았고, 계산이 완료되면 다음 사람을 의식하며 던지듯 물건을 담았다. 최저가가 보장된 정가제와 포인트 적립, 쾌적하고 논리적인 상품 진열, 친절한 계산원이라는 안정적인 체계에도 내 마음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이곳 온양전통시장은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말하게 하며 상대의 눈을 보게 한다. 걸음을 늦추다가 멈추게 한다. 여유를 가지게 한다. 기름기 묻은 검은 비닐 봉투가 쓰러지지 않게 차 여기저기에 싣는다. 뒷좌석에서 칭얼거리다 잠이 든 아기를 힐끗 쳐다보며 느릿느릿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 느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