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를 둔 마흔의 아빠는 이제야 마음의 소리를 따라 갑니다.
1.
줄지 않는 일, 명료하지 않은 결과들. 어쨌든 또 한 단계 나아가야 하는 내일, 내 일. 취객들이 3차를 향하는 축축한 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회사를 나선다. 집으로 돌아와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나태함을 끌어낸다. 시간은 축 쳐진 몸뚱이를 타고 녹아 내린다. 머리를 지배한 업무 생각들을 어렵사리 밀어내다가 잠들지만 두 시간이 되지 않아 눈이 떠진다. 그 찰나를, 몇시간 후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상사의 과제와 잔소리들이 진을 이루어 기세 좋게 파고든다. 그것들은 도대체가 포기하는 법이 없다. 부교감신경에게 애걸복걸하다보면 어느새 아침이다. 눈이 뻐근하고 몸은 뻣뻣하다.
달콤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좀 자고 싶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인생이란 그런거야라는 아무런 동력도 일으키지 못하는 위로라도 붙잡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 활력 넘치는 척하며 어제 내려놓은 일들을 붙잡는다.
2.
묵직한 카니발 한대가 하늘로 솟아오르고 오토바이 하나가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싱크홀 사고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사고다. 항상 의문이었다. 발 아래로는 사람길, 찻길, 전철길, 물길이 하루가 멀다하고 뚫리고 위로는 고층 건물이 쌓이는데, 제 아무리 단단하다는 땅이라도 견딜 수 있을까. 대부분의 뉴스 보도에는 이미 조짐이 보였다, 신고가 들어왔었다는 원망스러운 일침이 담겨있다. 서울시에만 싱크홀 고위험군 지역이 50개라고 한다.
3.
허리, 목, 손목의 통증, 3시가 넘어가면 뿌예지는 시야, 조각난 수면, 편두통. 우리는 심신 붕괴의 시그널을 무시한다. 고위험까지는 아니라고 부정한다. 불안한 눈길로 서로를 안심시킨다. 꽤나 이성적으로. 반대로 어떤 동물들은 지진의 가능성을 감지한다. 동물적 본능으로.
4.
동물적 감각을 발휘한다. 마음의 죽음을 향한 걸음이 빨라졌다는 시그널을 받아들인다. 이 신호는 회사가 주었다기 보다는, 자본주의의 조직생활로부터 수신했다. 스트레스는 성장의 동력이고, 역경은 즐거움의 이전 단계이므로 버텨야 한다, 축적되는 연금은 안정된 노후를 보장한다, 전력을 다해야 후회도 없다. 사회 발전에 도움되는 메시지는 채찍이 되어 매일같이 내 등을 아프게 쓰다듬는다. 누군가는 이 채찍을 동력 삼아 전진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다행히도 나를 잘 안다. 채찍이나 격려는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아니다.
5.
내 인생 마지막 퇴사가 될 것이다. 내 재능은 가치가 있고, 먹고 살아야 하므로 여전히 일은 할 테지만, 잔잔하게 서로를 파괴해야만 하는 조직 생활에는 몸을 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안정적인 미래를 원한다. 안정의 정의가 서로 다를 뿐.
6.
불확실성, 후회, 리스크. 이 모든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남이 골라 준 메뉴에 대한 후회보다, 내가 선택한 음식에 대한 후회가 더 낫지 않을까.
그래서 퇴사했다. 아니 퇴장한다. 조직 생활로부터.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