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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캔두잇 Feb 19. 2020

팀장님 혹시 '정치가'세요?

공무원 사회에서 정치가 팀장님에게 대응하기


승진 욕심 많은 정찬수 팀장과의 만남


Photo by Dylan Gillis on Unsplash


 어느 아침, 정찬수 팀장님(가명)이 팀원들을 모이게 하고 이렇게 말했다.      

"다른 팀 경쟁자 태윤이(가명)는 실적을 잘 올리네요. 우리도 열심히 합시다. 알겠지, 윤호야?"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뜨끔하다. 팀장님의 말은 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그렇다. 우리 팀장님은 승진 욕심이 많은 분이셨다. 첫 발령 당시 만난 정찬수 팀장님은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실적을 요구하는 일이 많았다.


정찬수 팀장님은 '돌려서 말하기'를 잘하시는 분이었다. 대놓고 "이거, 이거 해."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팀장님의 돌려서 말하기 기술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 의문형으로 말을 끝내면서 실적을 요구하는 의도를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가령, 성과가 되는 민원이 들어오면 이렇게 말한다.

"우리 관내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요즘 과장님이 이런 사항을 많이 챙기십니다. 우리 팀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말이 끝나면 나를 포함한 실무자들 중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 주변 눈치를 보다 막내인 내가 말한다. 

"(마지못해) 제가 해보겠습니다, 팀장님"


둘째, 실적을 올리는 일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는 말로 팀원들을 현혹시킨다.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성과를 많이 챙기죠? 하지만 이건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팀 성과 S 받으면 우리 모두 성과금 많이 받으니깐요. 이번 한 해도 열심히 해봅시다. 우리 팀을 위하여!!"                    




팀장의 정치가적 기질

Photo by Stephen Mayes on Unsplash

초임 시절, 정찬수 팀장님은 타고난 '정치가적 성향'이었다. 책 『폭군』에서 셰익스피어는 정치가들의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가의 특징 5가지를 설명한다. 

첫째, 그들은 태생적으로 부정직하다.

둘째, 그들은 서로 불신하기 때문에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방 밖으로 나가면 무엇이 보고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셋째, 그들은 각자 그들의 거짓말, 오로지 그들의 거짓말만이 상대방을 속일 수 있을 거라는 은밀한 희망을 품고 있다.

넷째, 그들은 자신이 덕성스럽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덕성스러운 체하며, 그런 허세를 통하여 그들 자신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들게 한다.

다섯째, 그들은 모두 그들 중 누군가가 음모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유보적인 생각을 표명하지 않는지 철저하게 감시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그 음모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여섯째, 독재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잡다한 사람들이다.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자 명령에 따르는 사람, 적극적으로 명령을 이행하면서 이익을 챙기길 바라는 사람,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책 『폭군』中 


위 6가지 유형은 다음 3가지 유형으로 구분 가능하다.

 

첫째, 독재자의 정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 

독재자에게 정말 속아버린 몇몇 사람들 

독재자가 겉보기와 마찬가지로 내면도 철저하게 사악한 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둘째, 독재자가 도덕을 위반해도 국가는 그런대로 굴러가기라고 보는 사람들

괴롭힘과 폭력의 위협 앞에서 겁을 먹었거나 무기력해진 사람들 

독재자가 형편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굴러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 


셋째, 독재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는 사람들 

독재자의 집권으로 그들 자신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음흉한 그룹의 사람들

독재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잡다한 사람들 


그렇다. 팀장님이 승진을 빨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팀장님의 승진을 도와준 대표적인 인물 4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첫 번째 인물은 '나'이다. 굳이 따지자면, 난 독재자의 정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유형 중 '겉보기와 마찬가지로 내면도 철저하게 사악한 자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지 못한 사람'에 속하였다. 당시 난 눈치가 정말 없었던 같다. 팀장님 하는 말의 의도와 속뜻을 알아채지 못한 채 시키는 일만 꾸역꾸역 했다. 실적 내라는 말에 힘들어도 해냈다. 팀장님이 실적을 요구한 이유가 승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팀장님 승진 이후였다.

 

두 번째 인물은 선임 동료 '민근수'(가명)이다. 그는 독재자가 국가를 운영해도 잘 굴러갈 거라고 보는 사람들 중 '독재자가 형편없는 인물임을 알지만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거라고 보는 사람'에 속했다. 매일 실적을 요구하는 팀장님을 바라보며 불평은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고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세, 네 번째 인물은 선임 동료 '진갑수'(가명)와 '김영진'(가명)이다. 그들은 독재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는 사람들에 속하였다. 먼저, 진갑수 씨는 독재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잡다한 사람들에 해당되었다. 팀장님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따랐다. 실적을 요구하면 어떻게든 실적을 만들었다. 한편, 김영진 씨는 독재자의 집권으로 그들 자신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음흉한 그룹의 사람들에 속했다. 김영진 씨는 팀장님이 좋아할 만한 얘기를 하면서 팀장님을 설득하여 다른 동료들의 실적을 가로챘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한 번쯤 생각해본다. 


지금의 나라면 독재자적 또는 정치가적 기질의 상사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누군가는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해 이의제기 또는 저항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문화에서 이의제기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스피치 강사 김미경은 ('회사에서 못된 직장상사 처리하는 두 가지 방법'상사가 진짜 못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먼저, 상사가 진짜 못된 사람이 아닌 경우는 시차와 거리 때문에 나와 케미가 많지 않은 경우예요. 이 때는 서로의 문제를 덮지 말고 진심을 다해 전투를 해야 해요. 진심을 다해 접근하면 그 사람도 인정하죠. 

만약 상사가 진짜 못된 사람인 경우라면 노력할 필요 없이 피해야 해요. 특히 천성적으로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양한 사람에게 강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간절하면서 도움이 필요 없을 때는 가차 없이 무시해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면 편해요.


https://youtu.be/38l2QNGCGTo


하지만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이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못된 상사를 피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난 여기서 공무원 사회에 한정해서 한 가지 사항을 추가하고 싶다.


'Not-to-do 리스트' 작성하라. 


기본적으로 직장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장소이다. 아무리 상사가 독재자적 또는 정치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만둘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이런 기질을 가진 상사들은 자기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직원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복종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들이 나를 보며 싫어하는 행동을 목록화하는 작업, 'Not-to-do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다.


'Not-to-do 리스트'에 적어야 할 항목은 2가지다. 


첫째, 상사가 싫어하는 행동이다. 사람은 누군가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독재자적 기질을 가진 상사는 단점을 더 잘 본다. 상사가 싫어하는 행동을 적고 조심하는 것, 독재자적 기질을 가진 상사에게 밉보이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자기 업무 중 실수했던 부분이다. 정치가적 기질을 가진 상사들은 자기 이익을 우선시한다. 자기 이익은 실적도 있지만,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그들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직원 각자가 자신의 일을 철저히 하는 모습을 원한다. 따라서 상사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서 철저하게 실수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독재자적 또는 정치가적 기질의 상사를 만나면 누구라도 힘들 것이다.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힘들어서 불평만 들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불평에 앞서,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적응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사를 통제할 수 없다. 우리 자신만 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도 못된 상사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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