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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캔두잇 Apr 09. 2020

'늙음'을 대하는 인식을 바꾸다

연령 차별주의를 바로잡고 노년기를 재정의하다

6년 전 일이다. 큰누나가 조카 서진이를 출산하였다. 우리 아빠가 마침내 '외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아빠는 처음에 기뻐하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씁쓸한 표정을 짓으며 이렇게 말했다.

“벌써 외할아버지네...”


아빠에게 있어 외할아버지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든 걸까? 마음에 안 들었다면 왜 그러한가? 곰곰이 궁금했다.

루이즈 애런슨이 쓴 책 『나이 듦에 관해서』 에서는 아빠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이유를 도리스 레싱의 말로 들려준다. 

“대놓고 떠들지 않지만, 노년층 대부분은 70년을 살든 80년을 살든 몸뚱이 안의 나는 젊은 시절 그대로라고 느낀다. 나는 그대로인데 몸뚱이만 변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아빠는 자신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고 신체가 노화되었다는 이유로 외할아버지로 불렸던 것이다. 인식과 현실의 괴리감이 씁쓸한 표정의 이유였다. 



연령 차별주의

왜 나이가 들면 개인의 인식과 현실의 괴리감이 생기는 걸까. 어째서 늙음은 나쁜 이미지로 생각하게 된 것일까. 책 『나이 듦에 관해서』의 저자는 그 이유를 사회 곳곳에 만연한 ‘연령 차별주의’라고 말한다. 


연령 차별주의란 사람들을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정형화된 틀에 가두고 차별하는 것이다. 연령 차별주의는 노년층을 홀대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젊은이들은 불행한 노년기를 맞이할까 봐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한편 노인들은 사회의 차가운 시선으로 건강을 위협받고 활동 영역을 제한받게 한다. 또 자신의 노년기를 거부하는 현상의 일환으로 과도하게 젊음을 추구하는 모습에 이른다. 


결국 노인을 부정적으로 사회적 편견이 사회 환경에까지 영향을 주어 많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이러한 편견이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연령 차별주의의 기원 : 산업화

연령 차별주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된 계기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말한다.

“19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육체를 신의 선물이 아니라 기계로 보기 시작했을 때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달라졌다. '인식'이 아니라 '구경'으로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에 가까운 존재로 숭상되던 사회의 어른들은 산업화의 렌즈를 낀 현대인의 두 눈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고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나이가 많다는 말은 젊은 사람에 비해 떨어진다는 의미와 동일시되었다. 또 사람들은 고령은 곧 기능 저하와 노후라는 근거 없는 방정식을 들이대며 가능한 한 노년층과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 이렇듯 인간을 기계로 취급하여 그 가치를 정의하는 풍조는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있다.”


19세기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년기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경제 생산성에 따라 인간의 값어치를 매기는 구조적 불평등은 노인들을 복지 사각지대로 몰아넣었다. 또 노인들의 이미지를 하찮음, 쓸모없음, 짐 덩어리, 못난이라는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노년층에 대한 이미지는 문화적 편견으로 발전하여 사회 곳곳에 퍼져나갔다.



사회 속 편견 : '노인'과 '안티에이징'

노인에 대한 문화적 편견은 '노인'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이미지와 '안티에이징'의 선호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노인'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어감은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미코 교수의 연상 테스트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녀가 매년 신입 의대생을 대상으로 '노인'과 '어르신'이라는 단어를 듣고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연상 테스트를 실시한다. 

테스트 결과, 노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학생들은 주름살, 굽은 허리, 굼뜬 움직임, 대머리, 백발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어르신이라는 표현에 대한 학생들의 주된 반응은 지혜로움이었다. 그 외 존경, 리더십, 경험, 권력, 재력, 지식이라는 답변도 있었다. 그녀의 이렇게 결론 내렸다. "노인이라는 단어는 이제 가망이 없다"


다음, 우리는 '안티에이징'을 극도로 선호한다. 먼저 안티에이징이란 무엇인가. 과학 기술이 노화를 억제하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가정을 전제로 등장한 것이 '안티에이징'이다. 미용 산업계는 '안티에이징'을 마케팅에 활용하여 우리에게 노화가 나쁘고, 늙음은 추하고, 노년기의 변화는 실패의 증거라는 선입견을 갖도록 부추겼다.  


반면, 저자는 "안티에이징은 시대착오적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안티에이징은 자연스럽고 보편적 현상인 노년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 수명 한계 연구의 대가 제이 올샨스키의 공동성명을 근거로 제시하며 안티에이징의 허상을 지적한다. 

 "일명 안티에이징 의학이라는 영역이 최근 국내외를 통틀어 수백만 달러 수익을 내는 산업으로 급성장했다. 판매되는 제품 중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하나도 없고 심지어 몇몇은 인체 유해성까지 우려됨에도, 그런 물건을 만들어 파는 업체들은 허위 정보를 과학으로 둔갑시켜 유포한다."



노년기는 우리 생각과 달리 불행하지 않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실제로 노년기는 불행한 걸까? 삶의 만족도 연구에서는 다른 어느 시기보다 노년기 때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분석한다. 오히려 중년기가 삶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 시기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책 『나이 듦에 관해서』에서는 갤럽의 여론조사와 연령별 삶의 만족감 연구 결과를 언급하며 이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여론 조사기관 갤럽이 조사한 바로는 전 세계 국가들을 비교했을 때 부자 나라의 경우 삶에 대한 만족도 그래프가 알파벳 대문자 U 모양을 그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에 의하면, 불안감 그래프는 10대부터 계속 증가하다가 35~39세 사이에서 정점을 찍는 모양새를 그린다. 그러다 60대 초반에 뚝 떨어진 뒤 65세에 다시 한번 껑충 내려가고 그런 다음에는 평생 최저치 수준이 유지된다. 행복과 만족감의 경우는 정반대 양상을 보였는데, 60~64세 집단의 점수가 20~59세 집단에 비해서는 더 높았고 65세 이상 집단과 비교하면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90세 이상이 중년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편견을 바꾸는 방법 : 인생의 제3막 '노년기'

늙어 감을 바라보는 긍정적 자세는 규칙적 운동보다 신체 기능 개선 효과가 크고 예방적 건강증진 조치를 적극 실천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노년의 늙어 가는 껍데기만 주목하고 하나의 인격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선 어떻게 하는가?

저자는 먼저 노인에 대한 문화적 편견에 의해 나이 듦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변질된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현상으로 보게 하기 위해 인생의 제3막인 노년기를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말한다.

"노년기의 개념을 제자리, 즉 평행선상에서 유년기와 성년기 바로 다음 자리로 돌려놓기에는 지금이 딱 적기다. 또 노년기도 그 안에서 젊은 노인부터 고령 노인까지 여러 범주로 다시 세분하여 구분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는 인생 전체의 궤적을 바르게 인식하고 똑바로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 

유년기 : 영아, 유아, 소아, 10대 초반, 10대 중후반, 청년(20대)

성년기 : 장년(20대 후반 ~ 30대 전반), 중년(40대 ~ 50대), 젊은 노인(60대~70대)

노년기 : 노인(70대 ~ 80대), 고령노인(80~85세), 초고령 노인(85세 이상)




종합해보면, 19세기 이후 산업화의 발전으로 사람의 가치를 경제적 생산성으로 보게 되면서 사회와 의료계 속 연령 차별주의가 고착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의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년기가 불행할 것이라며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여론조사와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년기 시기 때 삶의 만족도 높은 반면, 오히려 중년기 시기 때 삶의 만족도가 낮다고 나타났다. 결국 우리가 노년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견에서 벗어나 늙음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인생 제3막, 유년기, 성년기에 이어 '노년기'를 재정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편견에 벗어나 새로운 인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고영성 작가(『완벽한 공부법』의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 패러다임의 변화란 인식의 변화이다. 인식의 변화는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고, 사람들의 태도가 개인의 행동을 바꾸고, 개인의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
작가의 이전글 인맥에 관한 3가지 편견을 바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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