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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캔두잇 Apr 17. 2020

당장 운동이 하고 싶다면

삶은 움직임이다. 정신은 본래 육체적 행동을 통해서 의미를 찾는다.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당시 난 달리기를 좋아했다. 이유는 달리기를 잘해서였다. 같은 반에서 달리기 1등을 했으니깐. 나에게 달리기란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체육 수업 때 릴레이 달리기를 하는 날이면 누구보다도 즐거웠다. 그 시절, 달리기 잘하는 아이가 인기가 많았던 것도 한몫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모두 친절했다. 매일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며 놀았던 기억은 내가 가장 소중히 간직하는 기억 중 하나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나보다 더 빠른 친구들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달리기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달리기를 비롯해 체육 시간에 하는 대다수의 운동을 싫어하게 되었다. 달리기를 그만둔 후부터 낙천적인 성격에 친구도 많았던 '나'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던 내 모습이 사라졌다. 남의 말에 휘둘렸고, 어떤 행동을 할 때도 자신감이 없었다. 항상 불안과 걱정이 달고 사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학창 시절, 성격 변화는 왜 일어났을까? 켈리 맥고니걸 작가의 책 『움직임의 힘』에서는 움직임, 즉 '달리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엔도카나비노이드, 운동이 즐거운 이유

책 『움직임의 힘』의 저자 켈리 맥고니걸은 학창 시절 내 성격이 부정적으로 바뀐 원인을 달리기를 그만둔 데서 찾는다. 달리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불안감과 우울감이 증가하였고, 그것이 행동으로 반영되어 내 성격이 소심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류학적 근거를 제시하여 달리기와 같은 신체 활동이 주는 이점에 대해 설명한다. 

2010년 인류학자이자 듀크 대학 교수인 허먼 폰처는 하드자족의 신체 활동 습관을 관찰하고자 한동안 탄자니아에서 지냈다. (중략) 연구 결과, 하드자족에게서는 산업화된 사회에 만연한 심혈관계 질환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 불안감과 우울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매우 놀랍다고 했다.


그렇다면 달리기 전후 사이에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가. 신경과학자들은 달리기를 할 때 분비되는 신경화학물질 '엔도카나비노이드'에 주목한다. 저자는 엔도카나비노이드가 불안감과 걱정을 줄여주고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주장하며 신경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엔도카나비노이드를 두고 "근심을 없애고 행복을 선사하는" 화학물이라고 말한다. 이는 운동의 짜릿함, 즉 엑서사이즈 하이(Exercise high)가 당신의 뇌에 행하는 일에 관한 첫 번째 단서를 제공한다.

'초기 인류가 필사적으로 달리게 했던 이유와 빈속으로 종일 사냥하는 부담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에 대한 물음에 라이클렌은 러너스 하이에 주목한다.  러너스 하이의 쾌감과 고통의 경감이야 말로, 초기 인류가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달릴 때 쾌감과 신경학적 보상에 의한 고통의 경감, 즐거움의 유발을 유도했다고 추론하였다. (중략)

그는 '엔도카나비노이드'라 불리는 뇌 화학물질에 주목했다. 라이클렌은 달리는 사람들의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를 측정했다. 그 결과 가벼운 러닝을 한 경우에는 러너의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가 세 배나 높아졌다. 이 호르몬은 러너의 쾌감과도 일치했다.


엔도카나비노이드는 우리의 근심을 덜어주고 즐거움을 선사해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나 능력을 촉진시킨다. 저자는 말한다.

2017년 과학자들은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검토한 결과, 이 화학물질의 분비를 확실하게 증가시키는 세 가지를 파악했다. 그것은 대마초 중독, 운동, 사회적 연결이었다. 그렇다면 낮은 수치의 엔도카나비노이드와 밀접하게 연결된 심리 상태는 무엇일까? 대마초 중단, 불안감, 외로움이었다.

사람들이 운동한 날에는 주변 사람들과 더 긍정적으로 소통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결혼한 사람들도 배우자와 함께 운동한 날엔 더 친밀감을 느낀다. 더 믿고 의지하면서 애정이 깊어지는 것이다. 


중학생 시절, 나를 힘들게 했던 불안감, 우울감, 외로움의 원인이 '달리기'였다는 사실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특히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도 연락할 수 있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나를 괴롭게 한다.



경찰공무원 준비, 운동의 시작

초등학교 이후로 24살이 되기까지, 내 인생에 '운동'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군대 복무 시절, 부대원들이 축구나 족구를 할 때도 몸치라는 이유로 앉아 있기 일쑤였다. 


운동을 시작한 때 25살,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경찰공무원 공채 시험은 1차 필기, 2차 체력시험, 3차 면접시험으로 구성된다. 1차 필기만 어떻게 통과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 공부 5개월 만에 필기 합격을 하였다. 하지만 2차 체력시험이 문제였다. 24살까지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나는 부랴부랴 체력 학원 집중반에 등록한다.  합격자 평균 체력점수가 34점에도 불구하고, 내 점수는 '25점'이었다. 벼락치기는 항상 옳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던 일이다. 결국 최종 불합격이었다.

   

2차 체력시험에서 형편 없는 점수를 받은 나는 체력학원 상시반에 등록한다. 처음에 필기 시험과 함께 체력 시험까지 준비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부담은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체력 시험 준비의 일환으로 학원에서 하는 집단 운동은 나에게 3가지 이점을 주었다.

 

첫째, 수험 기간 동안 불안하고 우울했던 감정을 바로 잡아주었다. 무작위 임상 실험 스물다섯 건을 메타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주요 우울 장애를 진단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운동이 항우울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운동 중재에 대한 2017년 메타 분석 결과, 신체 활동은 불안 장애에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드러났다. 


둘째, 함께 운동하면서 나누는 즐거움이 수험 생활을 견디는데 힘이 되었다. 책 『움직임의 힘』에서는 함께 운동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집단적 즐거움'이라고 표현하였다. 심리학자 브로닌 타르는 함께 활동할 때 느끼는 일체감과 자기초월감을 '집단적 즐거움'이라 불렸다. 레드클리프-브라운은 '동기성'이 집단적 즐거움을 유발하는 열쇠라고 보았다. '동기성'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적 즐거움은 3가지 효과를 이끈다.

첫째, 연결감이다. 즉, 자아와 타아의 경계가 사라지는 느낌, 하나의 몸으로 된 느낌이다. 세상과 하나가 되는 기분은 자신감과 사교성으로 드러난다. 

둘째, 협력을 통한 신뢰감 형성이다. 사회적 그루밍이라고도 한다. 협력은 엔도르핀을 생성하여 사람 간의 신뢰를 형성하고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자연스레 신뢰가 쌓이게 되면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더 관대하고 믿음직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그 결과, 신뢰성에 대한 증거가 더 많이 쌓이게 되고 사람들은 그를 한층 더 신뢰하게 된다.

셋째, 단결하여 집단의 사기를 높이고 위기 대처능력의 상승이다. 심리학자들은 연대 활동을 통해 공동 목표를 추구하며 커다란 위협에 함께 대처할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우리-에이전시'라고 부른다. 집단적 움직임은 외부에 조직의 단결된 힘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어떤 난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집단적 즐거움은 외적 동기적 요소가 많은 공무원 수험 생활에서 내적 동기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합격할 수 있었다.  


셋째, 나 자신을 필기, 체력, 면접이라는 3개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도록 도와주었다. 저자는 "정신은 본래 육체적 행동을 통해서 의미를 찾는다"라고 주장하며 신경과학적 근거로 '고유수용감각'을 제시한다.

몸의 움직임을 인지하는 능력을 '고유수용감각'이라고 부른다. 육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고유수용감각은 우리가 능숙하게 움직이도록 돕는다. 아울러 자아 개념,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의 신체적 특징, 성격, 능력 따위를 스스로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우아하게 움직이면, 뇌가 근육 수축을 지각하여 "난 우아해"라고 인식하는 식이다. 이러한 감각은 당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믿을 만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즉, 움직임과 근육 수축을 통해 세상과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엄청난 비용을 들였음에도 재수를 실패한 나에게 공무원 시험은 엄청난 장애물이었다. 특히 수능과 달리 3단계에 걸친 채용 과정은 나를 지치게 하였다. 하지만 '운동'은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해 주었다.

 

난 첫 시험의 불합격을 딛고 7개월 뒤 경찰공무원 최종 합격하게 된다. 『움직임의 힘』을 완독하고 생각해보면 합격에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요소는 '운동'이었던 것 같다. 운동의 즐거움이 수험 생활의 불안감과 근심을 덜어주었다. 사람들과의 함께 한 집단 운동이 홀로 수험 생활을 해쳐나가는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주었다. 운동 덕분에 '재수 실패가 곧 사회의 실패자'라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있던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합격과 함께 찾아온 침체기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나에게 경제적 자유를 주었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나는 운동 덕분에 새로운 직업을 얻을 수 있었고,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면서 일과 사람에게 치이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운동의 흥미도 잃게 되었다. 특히 4교대 근무는 일반적인 생활 패턴과 상당히 차이가 있어 규칙적 운동을 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일주일 단위로 진행되는 운동 수업을 한 달 수강료를 지불하고 계속하기엔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경찰공무원 채용 당시 운동을 계속했던 '나'와 교대근무을 핑계로 운동을 그만둔 후의 나의 차이는 극명했다. 불안감, 외로움의 감정을 더 많이 느끼고, 수시로 무력감에 사로 잡혔다. 



새로운 시작

책 『움직임의 힘』은 나에게 2가지 깨달음을 주었다.


첫째, 운동의 즐거움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실천적 조언을 제시해주었다. 책에서는 '운동이 불안감, 우울감, 외로움을 경감시키고 사람들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여 사회적 연결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수많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설명하여 독자들의 메타인지를 높여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 평균 5649보만 걸으면 불안과 우울증이 생기고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미국인 하루 평균 4774보를 걷는다. 전 세계 성인의 평균 보행 수는 4961보다.

'중간 정도'로 '꾸준히' 하는 신체 활동이 러너스 하이의 핵심 열쇠임을 알 수 있다. 즉, 적당히 힘든 일을 20분 이상 꾸준히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실제 과학자들은 자전거 타기, 경사진 트레드밀에서 걷기, 등산을 통해서도 엔도카나비노이드가 비슷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운동이 뇌에서 반보상 체계를 되돌리고 무기력해진 보상 체계를 되살릴 수 있다. 동물과 인간 둘 다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신체 활동은 대마초와 니코틴, 알코올, 모르핀에 대한 갈망과 남용을 줄여준다는 결과를 얻었다. 다른 연구에서는, 메타암페타민 남용 치료를 받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실험에서, 참가자는 주 3회 걷기, 조깅, 근력 훈련을 한 시간씩 받았다. 8주 후, 그들의 뇌는 보상 체계에서 도파민 수용체의 유용성이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동기화된 차분한 동작, 심지어 앉아서 하는 작은 몸짓도 통증 내성과 사회적 친밀감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예컨대 요가의 경우, 댄스처럼 사회적 유대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여러 연구가 있다. 요가 수련은 여러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다. 저자의 경우, 요가는 즐거움보다 안도감을 주었고, 상처 받은 마음에 대한 위로 역시 집단적 즐거움이었다.

많은 운동 수업이 촘촘한 '군집화 현상'을 이용한다. 개인 공간을 좁혀서 움직일 때 느껴지는 사회적 응집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물리적 가까움 때문에 자신과 타인 간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이때 감정이 더 잘 전염된다. 

카라게오그리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흔히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신호가 오면 한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뇌 활동 기록을 보면, 영웅적 이미지를 고취하는 음악이 주의를 끄는 바람에 육체적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그만두게 하는 신호를 놓쳤음을 알 수 있다.

자연에서의 야외활동은 심리 치료에 효과가 있다. 한국 서울에 있는 홍릉 수목원에서는 우울증 치료를 받는 중년 성인들을 대상으로 매주 인지 행동치료를 받기 전에 수목원을 걷게 했는데, 한 달 후, 숲을 걸었던 사람들 중 61퍼센트가 차도를 보였다. 심리치료의 3배 효과였다. 오스트리아에서 시행된 한 연구에서는 기본적인 의학적 치료에 등산을 추가하자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의 자살 충동과 무기력증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인들은 자연 결핍을 겪고 있다. 평범한 토양에서 발견된 박테리아가 실제 뇌의 염증을 줄여준다고 한다. 흙이 항우울제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자연 속에서 심호흡만 하더라도, 생물학적 상호의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연대감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식의 육체적 친밀감에서 비롯된다. 울트라 인듀어런스 선수들이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은 혼자서 다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몰아낸다. 이러한 경험은 남들에게 도움을 받는 행위를 밀어내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혼자서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태도는 우울감과 함께 사회적 고립감을 부추긴다. 운동은 이러한 현상을 예방한다.


둘째, 운동에 대한 동기부여다. 책 『움직임의 힘』은 채용 시절 운동을 열심히 한 나의 모습을 상기시켜 주었다. 항상 자신감 넘치고 활력이 있던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을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환경설정을 위해 '헬스장'에 등록했다.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폐쇄된 공간에서의 위생 관념에 민감한 분위기라는 점도 잘 안다. 하지만 운동의 타이밍을 놓치면 흐지부지 될 것 같은 불안감, 주변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이 폐쇄된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헬스장을 선택하게 되었다. 현재 위생관념에 더 신경 쓰고 꾸준히 운동 중에 있다. 운동이 우리 몸과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실천까지 나아가게 해 주었던 책 『움직임의 힘』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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