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니 신년운세 손님이 하나둘씩 찾아오네요. 저는 서울에서 2년, 부산으로 이사와 3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껏 신년운세 손님이 가장 많았어요. 저는 신년운세를 달 별로 봐 드리곤 했는데 그게 제법 정확했거든요.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입소문이 참 무섭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잘 봐 드리면 그분들이 친인척이나 지인들을 또 데려오시거든요. 오늘은 사주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정확히는 많은 사람의 사주를 보며 느꼈던 점에 대해서요.
사주란,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뜻합니다. 저는 1994년, 음력 8월 7일, 오후 4시에 태어났어요. 사주로 말하자면 갑술년, 계유월, 신축일, 병신시 – 가 될 수 있겠군요. 사주팔자라는 말 들어보셨죠. 사주는 그를 구성하는 글자가 총 여덟 개라 사주팔자라 불립니다. 제 사주에 빗대자면 갑술년, 계유월, 신축일, 병신시니까 갑 / 술 / 계 / 유 / 신 / 축 / 병 / 신 – 이라 사주팔자인 겁니다.
많은 분이 한 날, 한 시에 태어나면 사주가 같은 셈이니 팔자가 같은 거냐는 의문을 가지시더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주가 같더라도 그들의 부모, 그들의 조상, 윗대가 어떤 공을 세웠고 어떤 업을 지었느냐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아요. 이 차원으로 넘어가면 보통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영역, 믿음의 영역으로 접어드는 거라 큰 언급은 삼가겠습니다. 손님들한테는 보이는 걸 다 말씀드리지만,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손님들과는 다른 곳에 계시니까요.
사주는 오행이라는 성격을 가집니다. 목( 나무 ), 화( 불 ), 수( 물 ), 토( 흙 ), 금( 금 ) - 이라 다섯 가지, 즉 오( 五 ) 행입니다. 사주에 나무가 많으니 물이 많은 사람을 만나라, 불이 없으니 불이 많은 사람을 만나라 – 식의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 얘기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단순히 어떤 오행이 많고 적은지에 따라 만날 사람을 구분 짓는 건 요즘 말로는 일반화의 오류 같은 겁니다. 사주에 나무가 많다고 물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가뜩이나 무성한 나무가 하늘을 가릴 만큼 자랄지도 모를 일이고, 불이 없다고 무작정 불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급작스레 화염이 닥쳐 놀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주는 어떤 오행이 있고, 어떻게 작용하며, 어떻게 쓰는 게 현명한가를 따져야만 합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에는 퍽 위험한 데가 있는 거죠.
좋은 사주, 그렇지 못한 사주가 있다면 좋은 사주는 균형이 잘 잡힌 사주입니다. 젊어서 큰 부나 명예를 얻거나, 죽을 때까지 호사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주는 다른 차원인 것 같습니다. 어느 인생이든 대운이라 불리는 좋은 시절이 있고, 고난과 역경의 시기가 있는데요. 좋은 사주는 개인의 성정이 바르고 맑아서 어떤 대소사든 균형감 있게 지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겁니다. 대운이 불었다고 해서, 자만하고 우쭐댄다면 내리막길을 걷기 마련이고, 고난이나 역경 속에서도 힘껏 살아보려 한다면 발을 내디딜 수 있는데 이 이치를 몸이 기억하는 거죠. 그런 거라면 타고나기를 그렇지 못한 사주였대도 얼마든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타고난 사주라는 큰 틀은 정해져 있다지만 밥그릇 크기, 사회적 위치, 배움의 정도 - 등은 우리의 역량에 따라 충분히 개선 시킬 수도 있겠군요.
저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사람을 낭떠러지로 미는 말처럼 들려서요. 특히나 악재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은 얼마나 끔찍한지요. 무슨 수로도 해결할 수 없고, 누군가는 억울해져야만 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손님들께도 어디서 점을 보시든 필요한 말을 잘 발췌해서 듣고, 당신의 줏대를 잃지 말라는 말을 꼭 해드리는 편입니다. 물론 점을 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보이기도 해서 그에 따른 처방도 말씀을 꼭 드리는 편이고요. 사주, 운명, 정해진 팔자, 다 의문스럽고 신비한 말들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은 선택 앞에 얼마나 신중하고, 얼마나 힘껏 사는지에 따라 순식간에 뒤바뀝니다. 즉, 암만 신비해도 자기 자신과 주변을 돌볼 줄 안다면 웬만큼은 공부가 되는 게 운명이라는 겁니다. 어느 손님께는 앞으로 점 보지 말고 그 돈으로 맛있는 밥 한 끼 사 먹으라고 한 미미가 생각나는 밤이네요. 우스운 말 같지만 어떤 인생은 제때 챙기는 끼니가 절실하기도 하니까요.
글을 읽고 쓰시는 여러분들은 기민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겠지만 남들은 놓치는 걸 보고, 어떤 사물이든 속 깊이 알아내는 경향이 있으실 겁니다. 그렇듯 사주란 건 양날의 검 같은 겁니다. 무작정 좋고 나쁘다 -로 양분하는 게 아니라 어떤 성정이고, 어떻게 쓰이는 게 옳은지 봐야 하는 영역입니다. 기민하고 생각이 많아 때로 슬퍼지지만 그 슬픔이 근사한 무엇을 만들어 낼 가능성을 보는 영역입니다. 그러니 어디서든 잘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연말도 무척 바쁠 테지만 잘 먹고 잘 써서 건강히 지내고 싶습니다. 요즘 영양제를 무려 다섯 가지나 먹습니다. 비타민, 칼슘, 프로폴리스, 홍삼, 당귀 – 이렇게나요. 옛날에는 영양제 선물이 싫었습니다. 먹어야 할 필요를 못 느껴서인 데요. 일이 많아 끼니도 제때 챙기지 못할 때는 영양제만 한 게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요 작은 한 알이 혈관 구석구석 퍼져나가 오장 육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습니다. 진짜인지, 그렇게 믿는 건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남은 한 해도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사주든, 운명이든 다 제쳐두고 여러분 자신과 나를 지키는 사람들,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에게 집중하시면서요. 오늘도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