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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by 이윤우


보고도 믿기 힘든 일들이 며칠 내내 일어났다. 뉴스 속보를 볼 때마다 혈관이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누군가 칼에 맞았다든가, 차에 치였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남겨질 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엉망으로 우는 얼굴, 허공에 갇힌 눈동자, 차가운 병원 바닥을 구르며 신음하는 모양새……. 작년 이맘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도 다 할 수 없으니까. 남겨진 사람들은 할 수 있는 한 울고, 발작할 뿐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됐을까. 잘못을 따지자면 어디까지 거슬러야 할까. 피의자가 사이코패스라서, 피의자의 부모가 아이를 방치해서, 피의자가 속한 지역구 지자체가 할 일을 못 해서, 그보다 중앙정부가 무능해서, 이전 정부의 정책이 잘못돼서, 그 이전, 그 이전의 정책이 더 잘못돼서. 묻고 따지자면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 이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누군가를 탓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보다 비슷한 일을 방지하는 게 아닐지. 세상이 미쳤대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피의자들의 호소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 사는 게 쉽지 않아서. 특목고에 떨어진 후 신경학적 질병을 앓아서. 그들은 모두 뜻대로 살아지지 않아서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피의자의 서사는 아무 힘도 없어야 한다. 어떤 지독한 서사도 살인의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은 서사만 그럴듯하다면 죄를 지은 사람도 한 번쯤 보호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범죄자는 죄를 들킨 후, 엇비슷한 변명을 하게 됐다. 마음에 병이 있어 그랬다, 특정 사건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빠져 그랬다, 부모가 힘들게 해 그랬다 같은.


살기 편해진 덕에 범죄자에게도 아량을 베풀 용의가 생긴 거라면 나는 빠지고 싶다. 사람들은 살기 팍팍해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들이 바보라서, 할 줄 몰라서 참고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을 속이거나, 인내와 노력을 무시한 채 편법을 기웃거리거나, 교묘한 혀끝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도 다 한 통속이다. 죄질의 높고 낮음을 떠나 언제든 한 사람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 채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흉흉한 세상이라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 세상이라면 더 꾹꾹 눌러 기억해야만 한다. 세상이 나를 배신하는 것 같아도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세 치 혀 놀림으로 쉽게 세상을 사는 것보다 참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범죄자의 서사가 완전한 핑계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인생이란 고난을 있는 힘껏 버텨낸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누구도 바보로 남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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