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금정구에는 일본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한 달에 서너 번은 간다. 그곳은 네 가지 메인 요리가 있다. 일본식 버섯 밥, 된장국, 멘치카츠가 함께 나오는 정식, 멘치카츠와 카레를 함께 주는 카레 정식, 야끼소바와 나폴리탄 파스타가 그들이다. 또 절기별로 새로운 메뉴를 하나씩 선보인다. 여름에는 히야시추카 – 라는 일본식 국수가, 가을이 되자 가지 된장 볶음이 등장했다.
멘치카츠 카레.
오늘은 새로 나온 가지 된장 볶음을 먹었다. 가지와 튀긴 고기를 양념에 볶아 뜨끈한 밥 위에 올려주는 덮밥 식 요리였다. 가지는 부드러웠고 고기 튀김은 얇은 튀김옷에 양념이 속까지 배어있었다. 양념이 스며든 밥을 한 숟갈씩 함께 먹는다. 함께 간 미미는 야끼소바를 먹었다. 센 불에 간장, 고기, 야채와 면을 함께 볶은 야끼소바는 마요네즈를 듬뿍 넣어 비벼 먹는다. 짭조름한 간장과 녹진 마요네즈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기름칠을 한다. 센 불에 볶아 맛있게 익은 양배추가 면발에 같이 딸려온다. 양배추를 씹자 아삭거리는 식감과 함께 머금던 소스가 혀끝으로 퍼진다. 이미 입 안은 익히 알던 맛있는 맛에 점령됐다. 우리는 아무 말 않고 서로를 보며 웃는다. 그렇게 오늘 식사도 성공이라는 걸 확인한다.
야끼소바
맛이 보장된 식당, 한 번도 실패가 없던 식당이 바로 그곳이다. 차로 이십여 분은 가야 하지만 시간도 기름도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런 식당이 있다. 어떤 식당은 배만 대충 불리는 격이라면 이곳은 몸도 마음도 살찌운다. 잘 갖춘 한 끼 식사에 하루의 이음새가 튼튼해진 것 같다. 다음 일정, 오후 업무, 늦은 새벽께의 퇴근까지 수월한 진행을 약속받는 기분이다.
단순히 맛 때문은 아니다. 그곳은 맛있는 식당이라는 설명으로는 제법 약하다. 아무래도 주인 부부 때문이다. 손님이 없을 때는 가게 문을 먼저 열어주시고, 이어 친절한 메뉴 설명을 해주신다. 쿠폰을 찍어주시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잘 웃으신다. 남편은 한국말이 능숙했다. 긴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어색하게 들리는 데가 없었고 발음도 한국식으로 깎여 있었다. 한국에서 먹고 살려면 이 정도쯤은 ! - 같은 노력이 묻어있는 말솜씨였다. 아내는 늘 수줍은 얼굴이었는데 한국말은 조금 어색해도 언제나 예쁘게 웃었다. 어디서든 공손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들이 만든 음식이라면 언제나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맛까지 있다면. 자주 가지 않고는 못 배길 수밖에.
가지 된장 볶음
밥심이라는 말 있잖은가. 사는 거 밥심이다, 일하는 거 밥심이다. 그 말처럼 한국인은 밥심이다. 밥심으로 일해서 다음 날 먹을 밥을 또 마련한다. 무한 밥의 굴레다. 옛날에는 워낙 나라가 못 살아서 밥 밥하는 세상이었겠거니 – 해도 지금도 다를 건 없는 거 같다. 과거는 정말 ‘ 밥 ’을 먹고 살아야 하는 거라면, 요즘은 ‘ 잘 ’ 먹고 살아가고 싶은 차이일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데 집중하는 건 같다. 그런 차원에서 이 식당은 내게 선물 같은 곳이다. 사는 게 팍팍할 때, 이곳에서 먹는 한 끼가 ‘ 팍팍 ’은 지워준다. 살아간다 - 만 안고 가게를 나선다.
사람을 살게 하는 건 제각각이겠지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배부른 한 끼만 한 게 있으랴. 고로 이 식당은 누군가를 살아가게 하는 곳이 아닐지. 잘 먹었으니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밥은 그런 것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도 다 괜찮아지게 만드는.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옛말처럼 인생은 단순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복잡할 게 뭐 있을까. 지금껏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하면 될 뿐인데.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인 부부의 가게도 더 번창하기를. 그들의 밥심에 누군가가 살아가듯, 그들도 잘 살아가기를 소곤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