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은 친구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우영은 생일이 빨라 음력으로는 서른세 살, 양력으로는 서른두 살이 됐다. 그는 카페를 했다. 이십 대에는 큰 시가지에서, 삼십 대에는 동네에서 했다. 우영은 장사 수완이 좋았다. 광안리 바다 어느 뒷골목에, 카페가 하나도 없던 시절에 처음 카페를 한 게 우영이었다. 우영의 가게가 잘 되자 하나둘 카페가 들어섰고, 그곳은 카페 거리처럼 됐다. 우영이 카페 거리를 만든 건 아니지만 우영으로부터 시작된 건 확실했다. 나는 우영을 육 년 전에 처음 봤다. 나는 스물네 살, 우영은 스물여섯이던가 일곱 된 해, 우영이 광안리에서 장사를 하던 그 때다. 첫 만남에 나도 우영도 서로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우영은 여자다. 나도 우영도 남자 이름처럼 들리지만 둘 다 여자다. 우영은 한자로 벗 우에 영화로울 영을 썼는데 이름처럼 벗이 많았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제 또래는 물론 동네 어르신까지 다 친구였다. 그 시절 우영의 광안리 가게는 가기만 하면 다 우영과 친구가 됐다. 장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영은 보이는 게 다는 아니었다. 누구나와 친구지만 누구에게도 속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우영에게는 선이 있었다. 그래서 우영은 친구는 많아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광안리 뒷골목이 부흥하자 우영은 그곳을 떠났다. 종적을 감췄다. 몇 년간 외국을 돌았다. 집도 절도 없이 온 나라를 돌아다녔다. 한 번씩 영상통화가 왔고, 화면 속 우영은 외국 히피 같았다. 희귀한 문양이 그려진 옷을 입고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새까맣게 탄 피부는 우영의 이를 더 희게 보이게 했다. 언제 돌아올 거냐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길로 서른이 넘을 때까지 우영은 외국에 있었다.
서른이 넘은 우영은 한국에 돌아왔다. 집도 절도 없는 우영은 미미의 집에 살게 됐다. 마침 미미가 이사를 떠날 때였기 때문이다. 우영은 미미가 떠난 집으로 들어갔다. 미미가 살던 집은 재수가 있었다. 미미 왈, 자신도 이 집에서 잘 돼서 나간다고, 너 역시 잘 될 거랬다. 정말 그랬다. 우영은 그 집 바로 앞에 카페를 차렸다. 장사가 잘 됐다. 우영의 수완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장사나 사업이라는 게 능력만 좋아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을 모으고 돈을 부르는 건 운이 따라야만 된다는 걸 말이다. 우영은 여전히 누구나와 친구가 되고, 한 번 온 손님은 단골로 만드는 재주가 있지만 이십 대와는 조금 달라진 모습이다. 우영은 이제 속 사정을 말한다.
우영은 평생 외로웠다. 친구가 많고, 늘 생기 있고 밝은 게 다는 아니라서. 아무도 모르는 속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서. 우영은 속마음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영은 약점이 생기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말하지 못해서 우영은 외국으로 떠났었다. 참다 참다 터져서 사라졌던 것이다. 우영은 잘 웃고, 상냥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흠이라곤 잡히지 않는 독한 데가 있었고 나는 우영을 이중적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우영은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요즘은 조금 덜 이상하게 생각한다. 우리도 나이가 들고, 모서리가 깎이기 때문이다. 새 피를 갈아 넣듯 본성을 바꿀 수는 없어서 다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우영을 영영 미지수로 느낄 것이다.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우영에게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언제나 예상 밖에 있는 사람들. 알 수 없어서 궁금하고, 궁금해서 뒤돌아보고, 그래도 몰라서 답답한 사람들.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우영 같은 사람이 있어야 살아가는 맛이 난다. 우영을 다 모르고 죽어버린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다 알지 못함에 미련이 남아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친구로 지낼 것이다. 어쩌면 인연은 모르는 세상을 체험하고, 더 배우라고 찾아온 선물이 아닐지. 맞는 사람에게서는 편안함을,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름을 배우라고 말이다. 허투루 놓칠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성장하는 작고 유약한 존재가 분명하다. 그러니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영영 우영과는 다른 사람이고 싶다. 지금껏 그랬듯 부딪히고 다투며 서로를, 나아가 세상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