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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보따리를 싸는 내 친구 지인에게.

by 이윤우

지인의 이름은 이지인이다. 지인은 미미의 친구였다. 미미의 소개로 알았다. 지인은 작고 까무잡잡했다. 지인은 요즘 말로 MZ처럼 생겼다. 미미와 나, 지인 모두 MZ 세대에 속하지만 오로지 지인만이 MZ 세대처럼 보였다. 모르는 아이돌이 없고, 모르는 유행이 없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옷들을 입었다. 곧 유행할 상품을 먼저 알아봤다.


지인은 실력 있는 디자이너다. 회사가 준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림을 잘 그렸다. 작가로 데뷔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도 자주 들었다. 지인은 서른한 살이다. 이십 대를 바쳐 일만 했다. 한 번도 일을 쉬지 않았다. 무속인인 미미와 나, 카페 사장인 우영, 그리고 지인은 함께 다녔는데 우리 중 유일하게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한 번도 일을 쉰 적 없는 지인을 가장 대단하게 생각했다.


( 위 ) 나 우영 ( 아래 ) 미미 지인



나는 지인처럼 일하는 사람을 드물게 봤다. 지인은 투정 부리지 않았다. 어느 직장을 가도 관두니, 마니 소리를 않았다. 묵묵히 일만 했다. 이직, 퇴직 같은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는 또래 여자는 지인이 처음이었다. 대신 지인이 유별나게 하는 게 하나 있다. 이사다. 지인은 이사를 너무 많이 했다. 서울에서 충청도로, 충청도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지역 곳곳에 지부가 있는 직장을 다닐 땐 지부 이동식으로 회사에서 힘써줬고, 어쩔 수 없이 이직해야 할 때도 능력을 알아보고 어디서든 데려갔다. 지인은 일도 이사도 쉬지 않았다. 지인에게는 아픈 오빠가 있다. 지인은 아픈 오빠의 요양을 돕기 위해 이사를 했다. 잘 낫는다는 대도시 병원 근처로, 공기 좋다는 시골로, 친척이 있는 곳 근처로 지인은 집을 옮겼다. 지인의 오빠는 선원이었다. 아파트만 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병이 생겼다. 지인은 가족을 사랑했다. 골치 아픈 이사를 매번 견딜 수 있다.


지인은 특이한 사람이다. 지인은 지금껏 유행에 뒤 처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노파다. 참고 양보하는 게 몸에 뱄다. 게다가 웃기다. 몇 년 전, 일본어 마스터가 되겠다고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는데 고작 일한 곳이 엽기 떡볶이 일본 지점이다. 매콤한 고추장 내가 풀풀 풍기는 엽기 떡볶이 주방에서 지인은 한국인들을 상대했다. 결국 지인은 자신을 갈구는 일본인을 상대하려고 일본어를 공부했다. 대부분 험한 말이다. 나는 지인이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와 일본어가 늘었는지 알 수 없다. 엽기 떡볶이 레시피는 잘 알고 있다. 당시 지인은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누군가 힘들 때, 옆에 있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는 걸 지인은 안다. 지인은 남에게 당연히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본능처럼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투정을 부리지 않고, 군말 없이 이사를 하고, 대뜸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지인은 일주일 전 서울로 이사를 갔다. 다니던 회사에서 서울 지부로 이동을 힘써줬다. 우리는 지인이 떠나기 전날, 기장 앞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부산으로 돌아오지 않겠냐고, 내일도 안 가는 게 어떻겠냐고 지인을 놀려댔다. 지인은 짐 싸는 게 너무 힘들어 이번만큼은 햇수를 꽉꽉 채울 거라고 말한다. 지인은 놀리면 발끈한다. 참고, 양보하고, 소심한 사람은 가슴께 묵혀진 화가 있다. 그래서 지인은 때때로 눈이 돈다. 그걸 보는 것도 좋다. 조용하던 지인이 대뜸 육두문자를 배설할 때도 그리울 것이다. 우리는 지인이 서울로 가는 게 싫다. 우리 중 가장 먼저 인간이 된 것 같은 반듯한 지인이 곁을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친구다. 미미와 나, 우영과 지인은 무속인과 카페 사장, 일개미 디자이너로 같은 거라곤 없다. 그래서 서로를 모를 것이다. 그게 좋다. 다 모른다는 호기심이 우리를 붙여놓을 것이다. 서로를 기다리게 할 것이다. 친구가 뭐냐 물으신다면, 기다리거나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닐지. 우리는 번갈아 그런 사람이 된다. 우리는 부산에서 지인을 기다린다. 우리에게 지인은 기다려야 할 사람, 지인에게 우리는 기다려주는 사람이다. 지인이 돌아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릴 것이다. 지인은 먼 타지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인이 그리울 것이다.


워홀 중, 우리 중 누군가를 위해 급히 한국에 왔던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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