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다녀왔다. 불멍을 하러 갔다. 올해는 하자는 말을 몇 번이나 미뤘는지 모른다. 그런 일들이 있다. 몇 번 미뤄야만 겨우 되는 일들. 다음에 밥 먹자, 술 한잔하자, 얼굴 한 번 보자처럼 불멍도 매 순간 다음을 약속한 일이었다. 드디어 해낸 셈이다. 고작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빨갛게 익어가는 장작을 보는 일이지만 좋았다. 따뜻하고 아늑했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동네 고양이도 여럿 모였다. 한동안 추웠던 모양이다. 옹기종기 앉아 어느 것은 몸을 데우고, 어느 것은 졸았다. 장작이 하나씩 타들어 가면서 장작더미가 푹푹 주저앉았다. 그때마다 사방으로 불씨가 튀었다. 고양이 하나가 놀라 펄쩍 뛰었다. 옆에 있던 다른 고양이가 그 모습을 지켜봤다. 바보같이 왜 그러냐는 얼굴로.
이번에 간 곳은 경주의 < 순금재 >라는 곳이다. 100년 된 한옥을 고쳐 숙소로 만들었다. 윗대 할아버지부터 간직한 한옥이라고, 후손이 이어받아 손님을 모신다고 했다. 방 세 개가 다다미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있다. 다다미를 열면 세 개가 통짜로 합쳐진다. 부엌이 가장 인상 깊다. 문 하나를 두고 마당과 붙어있고, 부엌에 서면 창밖으로 마당을 볼 수 있다. 창밖으로 닭장이 보인다. 닭 대여섯 마리가 몸을 붙이고 있었다. 모이를 쪼고, 자리를 다투고, 어느 것은 울었다. 오후 5시가 넘어가자 귀신같이 횟대 위에 올라갔다. 닭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시간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낮에 태어난 닭띠는 모이를 쪼느라 바쁘고, 저녁에 태어난 건 잠잠하다고. 정말 닭들은 저녁이 되자 없는 것처럼 굴었다. 횟대 위에서 자리싸움을 하다가 서열이 정해지니 어느새 잠잠했다.
여행을 가면 오늘은 먹고 죽자는 심보가 나선다. 이날도 다를 건 없다. 둘이서 얼마를 먹었는지 모른다. 낮부터 굶은 탓에 허기가 더했다. 몇 시간씩 고기를 먹고 나서야 만족했다.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커피도 내려 마셨다. 목적은 불멍이다. 저녁을 실컷 먹은 후에 장작에 불을 붙였다. 가만히 앉아 불만 본다. 얼마나 바삐 살면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돈 주고 사는 거냐고, 산통 깨지는 소리 비슷한 걸 해 본다. 옆에 있는 사람은 낭만도 없고 감성도 없는 사람이냐고 타박을 준다. 우리는 이런 데 쿵짝이 잘 맞다. 내가 눈치 없는 소리를 하면, 친구는 입을 때려준다. 어쩌면 나는 친구가 나무라는 게 좋아서 눈치 없는 소리를 더 할 것이다. 속으로만 하던 딱딱하고 낭만 없는 얘기를 입 밖에 꺼내도 다 대답해줘서, 모자라게 굴어도 사사건건 입을 때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서. 사람은 못난 걸 이해받을 때 다 허물어진다. 이든 저든 괜찮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가장 감사해야 할 일이다. 없었다면 영영 외로웠을 테니까. 나는 그 애 앞에서 자꾸 장난꾸러기가 된다. 그게 원래 나였다는 듯이.
야식으로 떡볶이를 먹고서야 하루가 다 끝났다. 모로 누워 영화 한 편을 보고 쿨쿨 잤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문무대왕릉에 들러 기도를 했다. 이곳은 우리가 일로도 자주 오는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침 해를 보며 기도하는 걸 좋아한다. 지평선 위로 바알간 해가 고개를 들 때, 자리를 펴 놓고 무엇이든 바란다. 각자의 앞날, 서로의 앞날, 지켜야 할 사람들의 앞날을 꾹꾹 눌러 기도한다. 불멍만큼 뜨겁고 아늑한 해가 저 멀리 높은 곳으로 떠오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잔잔한 여운을 데리고 집으로 간다. 난생처음 해 본 불멍, 시간을 맞춰 횟대 위로 올라간 닭들, 불씨에 자빠지는 고양이, 언제나처럼 가장 눈부신 아침 해를 데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당분간 우리의 일상은 이날을 중심으로 회전할 것이다. 탄탄한 구심력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 무엇을 약속하게 될까. 언젠가 제대로 된 캠핑을 떠나자고 해 볼까, 무릎까지 눈이 쌓이는 나라에서 겨울을 지내자고 해 볼까. 어디든 좋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다 괜찮은 사람이 있어서 아무 상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