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오늘 저녁 같이 먹자는 얘기였다. 그 얘길 누가 했냐. 내가 했다. 나와 친구 1 ( 앞으로 미미라 지칭 )은 걸어서 2분 거리에 집이 있고, 친구 2 ( 앞으로 우영이라 지칭 )는 카페 사장이었는데 걸어서 5분 거리에 카페가 있다. 금방 만나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날이 춥고, 밖을 돌아다니자니 몸 쑤실 것 같아 우리 집에서 보기로 했다. 음악 틀고 배달 음식 시키고, 우영이 커피 포장해 오기로 했다. 다 모인 시각 8시. 저녁 메뉴 충돌이 있었다. 오들오들 추워서 국물이 땡긴다는 공통 의견, 그러나 어떤 탕을 먹을지가 주제였다. 우영은 누룽지탕 먹자, 미미는 누룽지탕 그거 말갛고 심심한 게 오늘은 아니라고 했다. 보통 이런 식이다. 31살 미미와 32살 우영이 다투면, 30살 윤우가 재밌게 구경한다. 돌고 돌아 음식 시켰다. 해물찜이었다. 국물이니 누룽지탕이니 사라지고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우리는 늘 이런 식이었다. 처음 계획한 내용은 없고, 생각지도 못하게 가는데, 그게 나쁘지 않다. 해물찜이 맛있었단 얘기다. 통 오징어, 전복, 가리비, 콩나물, 아귀, 새우, 관자, 미더덕, 미더덕, 미더덕…. 미미와 우영은 미더덕 오도독 씹던 찰나 눈 마주치는데 미미는 삼키고 우영은 뱉었다. 미미는 그걸 왜 뱉냐고, 우영은 그걸 왜 삼키냐고, 국물 고르기 다음 편은 미더덕 논쟁이었다. 살면서 삼킨 사람 처음 봤다와 뱉는 사람 처음 봤다가 시작됐다.
미미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씹던 걸 휴지 위에 차곡차곡 쌓아 두냐. 집 갈 때 들고 갈 거냐. 심지어 미더덕은 오래 씹고 삼키는 게 맛있다. 우영의 의견은 달리 없다. 아니 그걸 왜 삼켜. 미더덕 삼키는 사람 처음 봤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나는 우영 쪽이었다. 나도 삼키는 사람 처음 봤다. 우리는 안 나는 결론을 두고 대대적인 투표를 연다. SNS에서 약 100명이 참여했다. 퍽 신빙성 있다. 미더덕 뱉는 사람은 삼키는 게 신기하고, 삼키는 사람은 뱉는 사람 신기해 너도나도 투표권 행사했다. 결론이 어땠냐고. 비율로 따지자면 28% : 72%. 뱉는 쪽이 압승이다. 그러나 미미는 외롭지 않다. 적어도 열에 셋은 미미 편이다.
탕수육 소스 붓냐 안 붓냐, 민트 초코 먹냐 안 먹냐처럼 정답은 없지만 긴 논쟁되는 것들이 있다. 단지 우리는 미더덕에 꽂혔을 뿐이다. 이게 뭐라고 투표까지 열었겠냐 만은 우리는 미미 입장이 미미 혼자인 게 싫고, 삼키는 사람 더 있는지 궁금했다. 나나 우영은 미더덕 삼키는 사람 정말 처음 봤다. 뱉는 쪽이 압도적 투표수를 보였지만 삼키는 사람 섭섭지 않게 우리도 삼켜보기로 한다. 은근 맛있잖아? 삼켜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사실 미더덕은 논쟁 거리 될 만 안 한다. 그저 한 동네서 오래 살아 모르는 거 없는 사람들, 노는 방식이 늘 거기서 거기라 재밌겠다 싶으면 판 키우는 거다. 비슷하게는 심심해서 괜히 시비 한 번 걸 때다. 화장하고 오면 오늘 결혼하냐, 운전하다 만나면 어디 도망가냐, 그런 거. 괜히 그래본다. 간혹 여차 저차 싸우고 며칠 얼굴 안 보는 일도 생긴다. 그래도 좋다. 어차피 화해하고 다시 놀 게 뻔하다. 이젠 누구 하나 삐져서 집 가면 잘 가라고 인사도 해준다. 몇 시간 뒤에는 허락도 안 맡고 왜 집 갔냐고 전화할 거니까.
다음 약속은 12월 25일이다. 크리스마스다. 나와 미미는 너네는 무당이니까 크리스마스랑 상관없냐고 질문받고 살았다. 상관있다. 빨간 날 이잖은가. 그날 서울에 있는 친구 3도 오기로 했다. 넷이서 큰 차 빌려 여행을 가니 마니 몇 달 시끄럽다가 가까운 아웃백으로 합의 봤다. 역시 이런 식이다. 모로 가도 서울 가면 그만이다. 미더덕도 삼키든 뱉든 뭔 상관이겠는가. 맛 좋으면 그만이다. 탕수육 소스 붓는 건 그만 아니다. 탕수육은 찍어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