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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안 달아주셔도 됩니다.

달아주시면 더 좋고요.

by 이윤우



가족과 친구 얘기 실컷 했으니 내 얘기를 쓸까. 맛있는 음식 얘기 쓸까. 아직 쓰지 못한 사람들을 데려올까. 며칠 고민이 많았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무슨 얘기 쓸까, 하고. 가만있어도 쓰고 싶은 얘기가 몇 개씩 있었는데 이번 주는 희한하게 생각 안 나더라고요.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운전을 많이 해서 그런가. 둘 다 원래 그러던 거라 이유 안 되고요. 아무래도 겨울 돼서 그런가 봅니다. 동서남북 머리가 막힐 땐 날씨 탓만 한 게 없죠.


겨울나기 어떠신가요. 저는 다음 주 주말, 동네 아주머니 김장 모임에 참여합니다. 앉은뱅이 의자에 걸터앉아 새하얀 배추 속살에 시뻘건 양념 치대는 일을 합니다. 겨우내 먹을 김치도 주신답니다. 수육을 큰 냄비째 삶으신다기에 냉큼 간다고 했지만요. 1월 1일에는 해돋이 보러 갑니다. 기장 바다에 갑니다. 내년은 해돋이 인파가 많을 것 같아요. 용띠해 첫해라니 안 보면 곤란할 것처럼 들립니다. 꾸준히 글 쓰고, 공부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게 인생인 줄 압니다. 꾸준히는 인생을 매끄럽게 잇는 단서가 될 겁니다. 꾸준하기 힘들지만, 힘든 걸 잘해서, 잘하고 싶습니다.


오늘 녹색어머니회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어머니도 아니고 자식도 없습니다. 동네 꼬마가 다니는 학교에서 매일 학부모 두 명을 선출해 교통 봉사를 시킵니다. 꼬마네 부모님 다 출근하셔서 제가 대신해 드렸고요. 끝에 무궁화 봉우리가 달린 긴 막대를 들고 횡단보도 건너는 아이들을 인솔합니다. 동네 꼬마 담임 선생님은 젊고, 인상이 좋고, 머리가 좋습니다. 안면이 있어 잠깐 얘기 나눴습니다. 꼬마 부모님은 아이가 선생님께 버릇없고 예의 없는 게 질색이라 학교에서 말썽 부리면 부모 눈치 보지 말고, 면학 분위기 흐리지 않게 아이 훈육 제대로 시켜달라 말씀하시는데 그 점에 먹먹한 모양입니다. 그 말은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보는 말이니까요. 다른 건 아니고 학생도 선생님도 학부모도 다 어우러진 학교 되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일기도 아니고 편지도 아닌 글을 계속 적는데 제법 편안합니다. 사실 오늘 글은 나는 좋고, 남들은 지루한 게 테마였습니다. 좋아하는 책 구절 잔뜩 올려 추천 식으로 글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안 지루한 얘기를 잘합니다. 저는 안 지루하고 남은 지루하다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책을 정해 보니 하나같이 전쟁 얘기였습니다. 저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들은 살았지만 죽었고 죽었지만 살았습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양극을 연속하는 게 가슴 아파서 좋습니다. 가슴 아픈 것들은 남을 울립니다. 남을 울리는 것들은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가슴 아픈 것들이 죽거나 살아서 누군가는 잘 살아 있습니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이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나는 재밌고 남은 지루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안 쓰고도 싶었습니다. 힘을 다 빼면 이렇게 써집니다. 아무 생각 않고 썼습니다. 전쟁에서 산 것들은 죽었지만 살았다고 쓸 때 울었습니다. 짜치고 이상합니다. 저는 하루에도 제가 몇 번씩 이상하고, 몇 번씩 좋습니다. 이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저인데요. 오늘 글은 적게 읽히고 낮게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씁니다. 이게 나라고 말하는 글들은 나만 알고 싶습니다. 여기 나 있어요 떼쓰는 것 같아 싫습니다.


저 진품 명품에 사연 보냈습니다. 법당 옆 방에 육 대째 내려오는 고서가 있습니다. 500권이 좀 넘는데 육 대째 내려오는 건 몇 권 안 될 겁니다. 사 대째 내려와 서고에 불이 나 소실된 게 있다고 어르신들이 그랬습니다. 어떤 건 육 대째, 어떤 건 오 대째, 어떤 건 사 대째, 제 나이보다 몇 배는 더 산 책들입니다. 진품명품 사연 보낸 얘기는 멀지 않은 때 다시 쓰기로 하고요. 일기도 아니고 편지도 아니지만 저는 이만 갑니다. 적게 읽히고 낮게 있길 바라며 가겠습니다. 추천하고픈 책은 조만간 연말정산을 제목으로 올라갈 겁니다. 거기에 올해를 기념하며 여럿에게 상을 주렵니다. 올해의 친구, 올해의 잘한 일, 올해의 댓글, 올해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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