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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 죽었다고 안 운다.

by 이윤우


도서관에 갔다. 얼마 만인지 모른다. 몇 년 전 생일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선물 받아 읽을거리가 많았다. 요즘 읽고 싶은 한국 소설이 생겨 갔다. 최인호와 김훈의 소설이 그리웠다. 그들 소설은 먼 과거가 배경이다. 작가는 전생이 기억난 사람처럼 쓴다. 덕분에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보는 것 같다. 잘 쓴 소설은 글자만으로 경험되게 한다. 나는 허구를 꺼리고 거짓말이 싫지만 잘 쓴 소설 앞에 서면 다 용서된다.


도서관은 사람이 많았다. 아이는 공부하고 어른은 읽었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었다. 책 읽는 세상은 사라졌지만 몇은 살아남았다. 몇이 살아남아서 서점과 도서관이 있다. 원하는 책이 도서관에 있었다. 얼룩덜룩 손때 묻었다. 책 거쳐 간 사람들 상상한다. 최인호와 김훈의 책을 왜 빌렸냐 물으면 비슷하게 대답할 것 같다. 칼에 베이고 철퇴에 으스러지는 게 슬프지 않아서. 그게 현실이라서. 이것은 허구지만 가장 생생한 지금인 줄 알아서…. 현실은 가장 그럴싸한 전쟁터쯤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더 그럴싸해지라고 기도한다. 아프지 말고, 슬프지 말고, 잘 살자고 천지에 빈다. 나는 사람들 우는 게 싫다.


울면 엄마 생각난다. 나는 엄마가 죽었을 때 거짓말인 줄 알았다. 엄마가 죽었다. 처음 듣는 말이라서 거짓말 같았다. 내 나이 스물아홉에 엄마가 죽었다. 엄마 아빠는 먼 고향에 살았고, 나는 부산 살았는데 우후죽순 비 내리는 어느 날 아빠만 부산 내 집에 왔다. 아빠는 하루 내 집에 머물렀다. 다음 날, 새벽께 엄마가 죽었다고 전화 왔다. 심장마비였다. 갑자기 죽었다. 평소 심장 했다.


아빠는 엄마 죽었대도 말없이 아침 먹었다. 친구 우영은 차를 빌려 데리러 왔다. 고향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아빠는 밥 다 먹고 우영의 차에 탔다. 아빠는 고향 가는 내내 울었다. 나는 울지 말라고 소리쳤다. 늙은 아빠가 우는 게 싫었다. 왜 자기만 두고 갔냐고 우는 거 볼 수 없었다. 아빠가 울면 아빠도 죽어버릴 것 같았다. 아빠는 장례식 내내 비슷하게 말했다. 나는 비슷한 소리 한 번 더 하면 집구석 엎어버리겠다고 했다. 아빠는 울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집구석 엎을 수 있을 걸 안다. 우리 아빠는 말이 씨가 되는 사람이다. 집구석 엎어서라도 입 다물게 해야 한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


한 차례 큰일 치르고 나니까 사람 우는 게 싫다. 마음 아프다. 우는 이유 지워주고 싶다. 남들 우는 이유 지우려면 내가 다 알아야 한다. 개똥밭 굴러서라도 모르는 거 없어야 한다. 세상은 아직 음지에서 우는 사람 많다. 힘없고 약해 우는 소리 안 들린다. 그래서 다 모른다. 그들은 약자다. 강자가 도와야 한다. 강자가 강자인 건 약자에게 나누라고 강자다. 강자가 약자에게 강한 거 싫다. 세상 비겁하다. 요즘은 강자가 약자에게 강하거나, 강자가 약자인 척한다. 세상이 거꾸로다. 세상 뒤집은 쪽은 원래 이게 세상이라고 한다. 원래 이런 세상이 어딨어. 자꾸 더 좋아지라고 있는 게 세상인데.


나는 엄마 죽음에 슬프지 않다. 슬펐는데 슬프지 않다. 사람들은 내가 슬픔 감추고 꿋꿋이 산다 생각하는데 다 괜찮다. 나 이럴 땐 무당인 게 좋다. 죽어서 어찌 됐고 훗날 만날 거 알아 괜찮다. 나는 강자다. 약자 아니다. 마음 강하고 줏대 있다. 그래서 우는 약자 돕는다. 내가 약하고 힘없어 허구 믿는 무당인 게 아니라, 정말 신 있냐고, 무당 진짜냐고 따져 물어도 떳떳해서 무당이다. 나를 한 사람으로 볼지, 허구 잡신 따위 믿는 무당으로 볼지는 자기 마음이다. 중요한 건 나 떳떳하고 우는 사람 싫어 돕는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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