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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선물의 시간.

by 이윤우


매년 이맘때가 되면 친구들의 선물을 산다. 주고받자 약속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된다. 올해 겨울 되었을 때 미미에게 목도리를 받았다. 남색 바탕에 푸른 계열 색들이 격자 무늬를 이룬 목도리였다. 나는 미미 줄 장갑과 머플러를 샀다. 둘 다 민트색이다. 팔목 아래까지 멀리 감싸는 긴 장갑, 머플러는 폭이 좁아 목을 반도 못 가린다. 톡톡 튀는 디자인이 잘 어울리는 미미에게 맞춤이다. 크리스마스께 만날 친구 우영과 친구 지인께 줄 것도 보는 중이다. 매년 선물 주고받으며 한 해 돌아본다. 올해도 잘 살았다, 토라지지 않고 잘 지냈다, 각자 자리에서 고생했다, 비슷한 말들이 선물에 실려 온다. 물건도 말을 한다. 사람 입서 나오는 것만 말이 아니다. 친구가 나 생각하는 마음 거기 다 있다. 고맙고 좋아서 잊지 못한다.


올해는 받은 선물이 더 있다. 구독자 두 분이 만년필을 보내 주셨다. 한 분은 노란색 만년필, 한 분은 디자인 잘 된 볼펜을 주셨다. 너무 감사해서 바로 전화드렸다. 연말인데 잘 지내시냐, 계신 곳 날씨는 어떻냐, 식사는 잘하시냐, 뻔하지만 진심으로 물었다. 두 분 다 잘 지내시고, 계신 곳 날씨도 좋고, 식사도 잘하시길 바랐다. 디자인 볼펜 주신 분은 호주에 계시는데 오히려 내 걱정. 한국은 눈도 오고 너무 춥다던데 걱정해주셨다. 선물 받고 작게 기도해 드렸다. 귀한 선물 보내주셨다고, 계신 곳에서 잘 살도록 해달라 읊었다. 다른 거 읊을 수 없다. 그 사람들은 나 계속 글 쓰라고 펜 줬다. 잘 살라는 말이다. 나도 그 사람들 잘 살길 바라는 게 도리다. 표지 사진은 미미의 손님이 미미와 내 선물을 사주신 것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영특하고 총명한 소녀 손님이다. 소중해서 표지 사진 안 할 수 없었다.


매년 연말 선물 주고받고 많이 했지만 올해 유독 풍년이다. 선물뿐만 아니라 연말이라 집에 와 얘기 나누시는 분 늘었고, 몇 년 얼굴 못 뵈다 오랜만에 연락 온 분도 있었다. 달력이 북적인다. 쉬는 날 없이 꼬박 한 달 지냈다. 선물 주고받는 거 떠나 연말 자체가 선물인 해다. 감사하게 지낸다. 내 말과 글이 어딘가 쓰이는 거 보며 잘 살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감사 인사 보낼 곳 많다. 요즘은 가족에게 감사하기를 실천한다. 이유가 있다. 인생은 자신과 싸우거나 남과 싸우거나인데 뭇 전투에서 오롯이 내 편 되어 줬던 게 가족인 것 같아서다. 살아보면 알겠지만 누가 내 편 잘해주나. 내가 맞든 그르든 내 말 먼저 들어주는 건 보통 가족이었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 뵈러 갈 때 미미 엄마 순자가 보따리 한가득 줬다. 아버지 드리라며 열몇 시간 배를 고아 주셨고, 갓 뽑은 가래떡 굳혀 떡국 썰어줬고, 가면서 먹으라고 주먹밥도 싸줬다. 아버지도 내 가족이고 순자도 내 가족이다. 이따금 미미와 어른 봉양에 대해 논의하는데 각자 부모님 나이 더 드시면 한 동네에 모셔 봉양하는 식으로 하자고 했다. 지금 있는 부산 우리 동네서 다 이뤄질 것이다. 아버지도 순자도 선물 같은 사람들이다. 내가 맞든 그르든 내 말 먼저 들어주는 사람들이다. 감사해야 한다. 가족이나 부모라서 당연히 내 편 들어줄 거라 하면 안 된다. 세상에는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고, 남이 더 가족 같을 때 있듯 뭐 하나 원래 그런 게 없다. 잘해주면 감사하고 도와주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못 받았다고 탓하면 안 된다. 당연히 받는 거 세상 이치 아니다.


받았으니 돌려줘야지. 미미께 받은 목도리도, 구독자분들께 받은 만년필도, 아버지와 순자 사랑도 다 돌려줄 것이다. 웬만하면 곱절로 갚을 것이다. 선물은 자고로 남이 받고 싶은 걸 주는 게 이치다. 그런 차원에서 그들께 내가 필요할 때 바로 도울 것이다. 그러자면 든든하고 쓸모 있는 사람 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성실히 살고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하면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이치다. 실로 건강하고 따뜻한 연말이다. 어떤 강추위도 우리 사는 이곳을 휩쓸지 못할 것이다. 이런 걸 가화만사성이라 안 하겠나. 가족이 화목하면 만사가 형통하다고. 선물을 가장한 도움 주고받은 모두가 나의 가족이다. 그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줄 것이다.



두 분께 선물받은 만년필.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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